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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이다. 여기 '이상적'인 고향의 감나무가 있다. 쪽빛 하늘이 눈부시고 뻗어 나간 나뭇가지를 가득 채운 탐스러운 감은 붉은 태양만큼이나 빛난다.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의 풍요다.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를 고집하는 화가 오치균은 몸의 감각을 화폭에 그대로 옮기는 작가로 유명하다. 유난히 잘 마르는 아크릴 물감이 굳기 전에 체온을 실어 감각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럼에도 조형미와 구성, 세부 표현은 소홀한 데 없이 치밀하다. 두텁고 진득한 물감의 느낌에 작가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감을 따고 장에 나가 팔았던 유년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 소설가 김훈은 "오치균 작가의 감은 땅속의 물과 함께 하늘에 가득 찬 시간의 자양을 빨아들여서 쟁여놓은 열매다"고 평했다. 부암동 서울미술관의 기획전 '봄·여름·가을·겨울을 걷다' 중 가을 편에서 이 작품을 포함한 오치균의 '감'을 여러 점 볼 수 있다. 전시를 본 후 석파정에서 쐬는 가을바람은 덤이다. (02)395-0100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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