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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고난과 도전의 상징 …그란마호





1956년 12월 2일 새벽, 쿠바 남동부 오리엔테주 라스콜로라다스 해안. 길이 18m, 폭 4.8m에 디젤엔진을 장착한 요트 ‘그란마(Granma)’호에 승선한 무장 병력 82명이 필사적으로 상륙을 시도했다. 상륙은 쉽지 않았다.

당초 목표 지점도 아니었다. 올리브색 군복을 입은 청년들을 이끌던 피델 카스트로(당시 30세)가 계획했던 상륙 지점은 ‘니쿠에로’.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의 영웅 호세 마르티가 내렸던 목표 장소에는 50여명의 동조자들이 트럭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으나 늪지에 좌초되고 말았다. 약속했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젊은이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 요트를 떠나 무기를 머리에 이고 수렁을 헤쳐나왔다. 아르헨티나의 의사 출신 에르네스토 게바라(체 게바라·당시 28세)의 기억대로 ‘상륙보다는 좌초에 가까웠다.’

그란마호를 버린 채 무기를 머리에 이고 수렁을 빠져 나오는 데 8명이 죽었지만 상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랜 갈망이었기 때문. 쿠바의 부패 독재정권에 항거한 1953년 7월 26일 몬카나 병영습격사건이 실패로 끝난 이래 징역과 망명 생활을 하면서도 ‘7.26’을 완성시키겠다는 노력이 뭉쳐지고 구체화한 소산이 그란마호였다.

멕시코에서 그란마호의 출항을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2차 대전에서 사용되던 미국제 비행정을 구입하려던 계획은 예산 부족으로 날라가고 대신 미화 1만 5,000달러를 들여 중고 레저용 소형 요트를 사들일 수밖에 없었다. 고생 끝에 멕시코 투산항을 출항한 그란마호 자체도 정상이 아니었다. 건조 당시 적정 승선인원으로 잡았던 12명보다 7배 가까운 인원이 탑승한데다 무기와 탄약, 예비 연료까지 가득 실은 그란마호와 젊은이들이 카리브해의 파도를 넘어 목숨을 건 상륙은 고난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항해와 좌초에 지친 쿠바 반군 앞에는 전투기까지 동원한 정부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릴라전을 위해 산으로 피신했을 때 살아남은 반군은 불과 14명. 꺼져가던 반군에게 이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무기와 식량, 자금도 없고 수염을 깎을 시간도 없어 ‘텁석부리 부대’로 불리던 반군을 위해 농민들이 병사로 자원하고 식량과 돈을 건넸다. 우세한 정부는 반군 앞에서 스스로 무너졌다. 결국 세를 불린 반군은 정부군을 물리치고 2년 뒤 수도 아바나에 입성,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소수 인원으로 시작한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부패와 빈부 격차. 미국의 여론도 처음에는 카스트로의 혁명을 반겼을 만큼 쿠바는 병들어 있었다. 쿠바인들은 똘똘 뭉쳐 미국의 지원을 받은 망명 쿠바인들의 피그만 침공(1961년)도 쉽게 물리쳤다. 혁명의 상징격인 그란마호는 그 어떤 ‘할머니’보다 유명세를 타고 쿠바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상륙지점이 있었던 오리엔테주의 일부가 그란마주로 바뀌고 기념관과 신문ㆍ국립공원ㆍ대학에도 그란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란마호 상륙 59년. 혁명과 토지ㆍ화폐개혁, 미국과 관계 단절, 사회주의권 편입과 공산권 몰락이라는 부침을 겪은 끝에 쿠바는 미국과 다시 국교를 맺었다. 냉전 시대에는 ‘작지만 강한 소련군’으로 불리며 아프리카 각지에서 내전을 배후에서 움직이던 공산주의 쿠바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나섰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부패를 끊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여전하다.

풍요의 꿈을 안고 쿠바를 탈출하려는 보트의 반대편에서는 살인적인 의료비를 피해 의료보장이 잘된 쿠바에서 진료를 받으려 밀입국하는 미국인인 탄 보트도 없지 않다. 쿠바의 앞날이 어디로 갈지는 불분명하지만 아직은 그란마호의 항해와 모험, 항거를 국민적 자산으로 여기는 사고가 우세해 보인다. 쿠바인들이 많이 보이는 장소에는 이런 문구를 담은 간판이 여전히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란마호의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수난을 극복하는 상징으로 ‘그란마’에 담긴 쿠바인들의 기대는 통할 것인가. 그란마호의 항적은 어디까지 이어질까./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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