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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사각지대에 놓인 정신질환 범죄

'묻지마 범죄' 3분의1 이상 차지하고 재범률 66%로 일반인 크게 웃돌지만









우울증을 앓던 최진옥(가명)씨는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집 거실에 불을 질렀다가 지난달 재판을 받았다. 최 씨는 26년 전에도 두 딸을 안고 투신한 적이 있으며 당시 두 살이었던 작은 딸을 잃었다. 재판 관계자들은 최 씨의 우울증에 주목했다. 담당 변호사는 법정에서 "최 씨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치료와 관용"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본인의 우울증이 딸을 잃게 했을 만큼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타인에게 위험을 끼치는 방식으로 자살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최 씨에게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정작 재판 이후 최 씨의 우울증 치료는 본인의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현행 제도로는 최 씨에게 적용할 만한 치료 명령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법조계와 국회 안팎에서는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치료감호제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2일 대검찰청 범죄분석·범죄백서에 따르면 2013년 범법 정신장애인은 7,053건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해 검찰의 치료감호 청구 건수는 254건에 그쳤다. 범법 정신질환자 대부분의 치료가 개별 선택으로 넘겨진 셈이다.

현재 정신질환 범죄자의 치료를 강제하는 수단은 치료감호가 대표적이다. 치료감호는 재범 위험성이 있는 정신질환 범죄자를 일반 교정시설 대신 치료감호 시설로 보내 치료하도록 하는 제도. 최장 15년간 시설에서 강제로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신질환 범죄에 대한 가장 강력한 억제 수단이다. 가정법원에서 의료기관에 위탁해 치료하도록 하는 보호 처분도 있지만 이는 가정폭력 사건에만 적용되므로 범위가 제한적이다.

치료감호의 경우 중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만 검사가 청구한다. 현행법으로는 집행유예 등 금고형 이상이면 피고에게 치료감호를 명령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의 심각한 범죄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치료감호 역시 자유를 억압하는 하나의 징벌인 만큼 단순히 정신질환이 깊다고 해서 감호소에 구금할 수는 없고 상당기간 구속을 해야 할 만큼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는 요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최 씨에게 치료감호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게다가 치료감호소의 수용 여력도 부족하다.



영국이나 독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나 주취자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강제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 등이 지난해 '치료감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단 한 차례 소위원회 논의를 거친 뒤 1년째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검찰이 치료를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거나 법원이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내리면서 치료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해 대다수의 정신범죄 질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한성 의원실 관계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 중인 19대 마지막 정기국회를 넘기면 법안은 사실상 자동 폐기된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범죄를 방치하면 묻지마 범죄 또는 존속살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5월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50세 농부가 환청 상태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이웃 주민을 낫으로 13회 내리쳐 살해했다. 대검찰청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동안 발생한 묻지마 범죄 163건의 원인 가운데 정신질환이 59건으로 가장 많았다.

재범률도 높다. 정신질환 범법자의 재범률은 65.9%로 일반 범법자 재범률 41%를 훌쩍 넘어선다. 올 초에는 13년간 우울증을 앓고 있는 40대 여성이 삶을 비관해 뇌출혈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목 졸라 살해했다. 그녀는 2004년에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두 살 난 딸을 살해했다가 2년 6월의 실형을 살았으며 출소 후 10년 만에 다시 존속살해를 저지른 것이다.

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가벼운 우울증부터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아버지만 따른다는 이유로 6세 자녀를 살해한 여성이나 13년 만에 얻은 딸을 육아갈등으로 익사시킨 여성은 모두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정성국 박사는 "존속살해의 39.6%가 정신질환으로 발생하는데, 우울증세를 보이는 사례를 합하면 절반을 넘어설 것"이라며 "산후우울증 등 30대 젊은 어머니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서는 국내에 치료를 필요로 하는 심각한 우울증 환자가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치료를 받는 환자는 29만 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정신질환 범죄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범행이 일어나고 재범으로 이어지면 이는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며 "근원적 치료 없이는 범죄발생을 막을 수 없는 만큼 관련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흥록기자 ro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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