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취임 이후 매출과 변호사 수 큰 폭 증가
음서 채용 없애고 변호사 전문성 강화에 주력
지난 6월 국내 법무법인(로펌) 업계의 시선이 일제히 법무법인 세종으로 쏠렸다. 일본과 중국 등의 유명 로펌을 제치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지역 ‘기업별 분야 최고 혁신 로펌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이 상은 기업 법률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법으로 업무를 수행한 로펌에 주어진다. 세종은 독창성·합리성·영향력에 있어 가장 높은 점수(26점)를 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른바 ‘강신섭 효과’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번 수상은 강신섭(57·사진) 대표 변호사가 세종호 선장으로 합류한 2013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시 세종은 실적만 봐도 역성장 추세를 이어가는 등 ‘첩첩산중’이었다. 변호사 수에서는 이미 법무법인 광장에 추월당했다. 법무법인 율촌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경쟁 로펌인 태평양과의 격차도 한층 더 벌어졌다.
하지만 세종이 ‘강신섭 DNA’를 이식하면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지난 2012년 1,300억 원에 머물던 매출은 2년새 1,512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297명이었던 변호사 수도 올해 341명으로 늘어나는 등 사세도 확장했다. 풍랑 속 세종호가 선장을 바꾼 게 ‘신의 한수’로 작용한 셈이었다.
세종의 체질 개선을 이끈 강신섭 DNA의 한 가운데에는 ‘기본권의 존중과 신뢰’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그가 처음 꺼낸 단어도 이 두 가지. 또 마주 않아 1시간여를 이야기하는 동안 ‘휴먼과 믿음’이라는 단어를 즐겨썼다. 강 대표의 말에는 아무리 법이 지배하는 세상이라지만 ‘법 위에 사람이 있다’는 게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그의 오랜 지론이 담겨 있었다.
강 대표는 “법의 원리·원칙은 헌법과 민법 총칙에 고스란히 쓰여 있다”며 “인간 기본권 존중과 신뢰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해박한 법률 지식만으로는 좋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며 “소송도 사람의 일인 만큼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해야만 고객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상 기본권을 중시하고, 믿음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는 철칙은 강 대표 변호사가 세종에 합류한 이후 발자취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 대표 변호사로 자리를 옮기고 가장 먼저 메스를 댄 부분은 직원 채용방식. 평등이라는 원칙 아래 공정하게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음서 채용’(고려·조선시대에 공직이나 전·현직 고관의 자제를 과거에 의하지 않고 관리로 채용하던 제도)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신입 변호사는 물론 직원을 뽑을 때도 경영진의 아들이나 며느리 등 친인척을 채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사법연수원 13기 출신인 그는 서울지법 판사·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으로 11년간 재직하고 1998년 법률사무소를 개업했다. 그 무렵 ‘JP모건·SK증권’ 소송으로 ‘스타 변호사’ 반열에 올랐다. 이후 기업 간 인수합병(M&A)·수익증권환대대금 소송 등에서 승승장구하고 현재 세종 대표변호사 자리까지 오르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였지만 로펌 업계에 만연하고 있는 ‘뒷배경’ 인사 관례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소통에도 경계를 허물었다. 강 대표는 점심 식사 시간이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후배 변호사를 찾는다. 자투리 시간에도 회의실에서 젊은 변호사와 토론하기를 즐긴다. 짧은 시간이나마 법조계 뒷얘기를 알리고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서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강 대표 변호사가 체질 변화에 이어 주목하고 있는 곳은 전문성 강화다. 노동·환경·세금 등 고객 요구를 한 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먼저 도제(어려서부터 스승에게서 직업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능을 배우는 직공) 시스템을 바탕으로 젊은 변호사들을 굵직한 소송에 투입 하고 있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는 말처럼 최일선에서 스스로 배우게 하겠다는 의도다.
또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으로 세종의 미래 역꾼을 양성하는 데 역점을 뒀다. 현재 세종은 신입 변호사들을 위해 △업무처리 요령 △준비서면 작성 △증인 신문 요령 등으로 구성한 오리엔테이션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외부 강사를 초빙해 강의하는 법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오는 2017년 법률시장 3단계 개방에 발맞춰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15명의 변호사를 미국·영국 로스쿨에 유학을 보내는 지원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변호사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데 가장 최고는 경험입니다. 홈플러스 매각 등 큰 사안에도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 노동·세금·금융 분야 최고 베테랑 변호사들을 함께 배치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선배 변호사들에게 배우고,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아 최고로 발돋움하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신구 조화를 통해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재임 기간 동안 최고의 변호사를 육성해 명실공히 국내 로펌 시장 넘버 원(No.1)으로 우뚝 서는 게 목표”라며 “우공이산이란 좌우명과 같이 우직히 목표를 향해 정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현덕기자 always@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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