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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

"공천 룰 서둘러 확정하고 4대 개혁·민생법안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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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룰을 서둘러 확정하고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개혁,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민생 법안 등 산적한 현안 논의에 집중해야 합니다."

원유철(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오전 국회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전셋값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갖는 분야는 경제 활성화와 민생 살리기"라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원 원내대표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공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이 지난해와 같은 26위에 머무른 것은 금융과 노동 부문의 후진성 때문"이라며 "경제 전반의 체질을 바꾸기 위한 4대 개혁 완수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여당 원내대표와 대통령의 사이가 나쁜 게 이상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최근 공천 주도권을 놓고 청와대와 새누리당 비박계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가 일찌감치 자신의 스탠스를 정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정부와 국회는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관계지만 당청은 다릅니다. 하나의 '운명공동체'로서 새누리당이라는 토양 위에서 대통령도 당선되고 국회의원도 나오는 것입니다. 여당 원내대표와 대통령의 관계가 나쁜 것이 오히려 비정상 아닙니까. 친박과 비박이 다툴 때가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잘돼야 결국 대한민국도 성공한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해야 합니다."

이는 원 원내대표가 여권의 권력투쟁 국면에서 사실상 친박 쪽과 뜻을 함께하기로 입장을 정리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안을 통과시킨 후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는 불가능하며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 데 이어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는 김 당 대표 없이 단독으로 배웅을 나가기도 했다.

계파 얘기가 테이블에 오르면서 대화의 흐름은 자연스레 앞으로 치열한 논의가 예상되는 공천제도로 옮아갔다. 4대 개혁 등의 현안과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이어갔던 원 원내대표는 공천 룰 얘기가 나오자 한층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공천특별기구는 무조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며 "안심번호 도입은 불가능하다, 전략공천은 배제해야 한다 등의 가이드라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일정 부분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냐는 질문에는 "주장을 따로 하지 않겠다. 특별기구에 참여하는 모든 의원이 열린 마음으로 당헌·당규를 존중하며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로 구체적인 답변을 대신했다.

황진하 새누리당 사무총장은 5일 '국민공천제 실현을 위한 특별기구' 인선안을 최고위원회에서 공개할 계획이지만 계파 간 의견 불일치로 특별기구 출범 자체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명 안팎의 특별기구 인선이 이뤄지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도입과 컷오프·전략공천 유지 여부 등의 쟁점을 놓고 친박과 비박 간 본격적인 기(氣)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 원내대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물 건너갔지만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해 상향식 공천제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중지가 모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친박과 비박을 녹여내는 용광로 같은 원내대표가 되겠다는 목표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며 "원내대표로서 힘의 경중(輕重)이 아닌 시비(是非)를 기준으로 중심을 잡고 갈등을 해소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로 힘든 싸움이 예상되는 노동개혁에 대해서도 원 원내대표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새누리당은 노사정 대타협 직후인 지난달 16일 근로기준법·기간제법·파견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등 5개 법안의 개정안을 당론으로 확정·발의한 바 있다.

원 원내대표는 "노사정 합의를 전제로 입법한다는 애초의 계획에 아무 변동이 없는 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게 야당의 전폭적인 협조"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최근 만난 대통령도 '노동개혁 법안이 잘돼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 귀띔했다.



He is …

△1962년 경기도 평택 △1988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1~1995년 경기도의회 의원 △15·16·18·19대 국회의원 △2006~2007년 경기도 정무부지사 △2010년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2015년 2월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2015년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국민 안위 지키려면 '조건부 핵 무장' 필요

나윤석기자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조건부 핵무장론(論)'을 일관되게 펼치는 드문 정치인이다.다소 과격한 주장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국민의 안위(安危)보다 중요한 가치는 어디에도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원 원내대표는 "상대방이 총을 보유했는데 우리가 칼만 수백 개 갖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국회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조건부 핵무장'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란의 핵협상 타결로 마지막으로 남은 게 북핵 문제"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우리 정부가 제시한 상생·협력의 길로 나와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사드 배치 등 논란이 일고 있는 문제의 첫 번째 판단기준 역시 전적으로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원 원내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외교·안보 전문가로서 변화무쌍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원 원내대표는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절실한 것이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 억제는 물론 언젠가 다가올 통일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이라는 '카운터파트너'와의 관계설정에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 원내대표는 충분한 외교성과를 달성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남북관계가 새롭게 열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에 대해 미국 정부도 충분히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그러면서 "대통령의 '통일대박'이라는 표현은 더없이 적확한 말"이라며 "대한민국의 미래가 통일에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갖고 동북아 외교를 주도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북 위협 대응할 유일한 길 주장



"마음을 비우니 길이 열리더라"

맹준호기자 next@sed.co.kr

19대 최고위원 도전· 경기도지사 경선 등 잇단 실패

욕심 버리고 유승민과 러닝메이트… 결국 원내대표에


"마음을 비우니 길이 열리더라."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소년등과(少年登科)'한 대표적 정치인으로 꼽힌다. 28세의 나이로 최연소 도의원에 당선된 뒤 정계에서 각종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그 뒤안길에는 만만치 않은 굴곡이 있었다.원 대표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재학 중이던 지난 198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중앙청년위원회 송탄시지부장을 맡으며 정치를 시작했다. 이듬해 졸업 후 LG화학에 취업했다가 1991년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도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때 나이가 28세. 최연소 당선자로 주목받은 것은 물론 공교롭게도 득표 수가 7,777표인 것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

33세 때는 고향인 평택에서 15대 총선에 도전한다.

공천에서 탈락해 무소속으로 나왔지만 3선 의원 출신인 고(故) 김영광 신한국당 의원을 더블스코어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15대 의원 299명 중 두 번째로 젊은 의원이었다.당선된 뒤 신한국당에 입당해 1997년 대선 때는 이인제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했고 원 대표도 이 후보를 따라 당적을 옮겼다.

이후 국민신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측과 합당해 새천년민주당을 만들면서 당을 다시 옮겼고 2000년 16대에서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다.

그러다 원 대표는 2002년 친정인 한나라당으로 돌아왔지만 2004년 17대에서는 탄핵 후폭풍을 맞아 낙선한다. 그의 첫 정치적 고비였다. 이후 김문수 경기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내며 기회를 엿봤고 2008년 18대와 2012년 19대 총선에서 연속 당선돼 어느덧 4선 중진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후 여정에 대해 "마음을 비우니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19대에서 최고위원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도 떨어지는 등 실패만 하다 보니 마음을 비우게 됐다는 것이다. 올 초 3선의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에 도전할 때도 4선인 자신이 다선 의원이지만 흔쾌히 러닝메이트를 수락했다. 마음을 비웠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정책위의장이 됐고 7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중도 하차하자 결국 원 대표가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됐다. 원 대표는 최근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가 '내년에 4선이 되는 영남·충청권 의원 중 차기 대선 후보가 있다'고 한 데 대해 "그거 살짝 섭섭하더라"며 웃었다. 수도권 출신 다선의원의 역할론을 얘기한 것이지만 큰 꿈에 대한 욕망도 엿보이는 발언이다.



/대담=안의식 정치부장 miracle@sed.co.kr
/정리=나윤석기자 nagija@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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