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9,000억원에 달하는 현대상선의 사모회사채 상환을 최장 2019년까지 유예해주기로 했다. 회사채신속인수제는 원칙적으로 올해 종료되지만 올해까지 발행된 물량은 발행사가 희망할 경우 한 차례 더 차환발행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적용한 것이다.
12일 금융당국과 현대상선·신용보증기금 등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10월22일 만기 도래한 사모회사채 2,240억원에 대해 원금의 20%인 448억원만 자체 부담하고 나머지1,792억원은 차환발행으로 만기를 2017년 이후로 연장했다. 7월 금융당국은 2013년에 도입한 회사채신속인수제를 올해 종료하기로 했다. 다만 올해까지 차환발행한 물량에 대해서는 만기시 한 차례 더 차환발행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뒀다. 현대상선이 이 조항을 처음 이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1,792억원어치의 사모사채 중 30%는 채권은행, 10%는 금융투자 업계가 인수하고 나머지 60%는 신용보증기금이 떠안아 다른 일반 회사채와 묶어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형태로 일반투자자에게 판매한다.
현대상선은 같은 날 만기가 도래한 공모회사채 1,700억원 역시 회사채신속인수제를 통해 1,360억원어치를 사모사채 형태로 전환, 만기를 2년 뒤로 유예했다. 차환 조항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2017년 10월 1,360억원의 20%만 상환하고 나머지 80%에 대해서는 만기를 재차 2019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의 사모사채 만기연장 물량은 △올해 2,240억원 △2016년 1,760억원 △2017년 4,640억원 등 총 8,640억원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이 워크아웃에 들어가거나 혹은 신용등급이 큰 폭으로 하락하지 않는 이상 기발행 물량에 대한 차환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모회사채의 만기를 한 번 더 연장함에 따라 당장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현대상선으로서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매각이 어그러지면서 당장 올해 말로 예정된 차입금 상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이에 따라 전날 현대상선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고 또 담보대출을 추가로 받아 4,5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규모 면에서만 봐도 회사채신속인수제 일몰의 예외를 통해 상환이 유예되는 금액이 두 배나 더 크다.
반면 일각에서는 회사채신속인수제의 혜택이 현대상선에만 돌아간다는 점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이 최근 하반기 신용위험평가를 토대로 은행에 한계기업 정리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특정 기업에 대한 혜택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얘기다.
또 산은이 현대그룹에 추가적인 자구책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회사채 만기를 연장하기로 한 것은 금융당국이 밝힌 '선자구·후지원'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금융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회사채신속인수제를 통해 전체 차환 발행 규모의 60%를 떠안아야 하는 신용보증기금의 여력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그나마 시행할 수 있는 조치"라며 "다만 신용보증기금이 여러 회사채를 묶어 만드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제도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지원 성격이 큰 만큼 결과적으로 현대상선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이 현재로선 마땅한 현실적 해법이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만기 연장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해양수산부는 그 동안 금융 논리만 보지 말고 산업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2대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 구조와 글로벌 해운동맹의 다른 노선, 환적화물의 효율적 처리 등을 위해 복수의 국적 선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다.
/임세원·조민규기자 w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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