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했던 NC다이노스의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는 올 초 미국 전지훈련장에 깜짝 놀랄 모습으로 나타났다. 원래 근육질 몸매로 '로보캅'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그가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집중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보디빌더를 연상시킬 정도로 몸이 더 단단해졌던 것이다. 테임즈는 좀처럼 만족을 모르는 선수다. 그는 월등한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습한 부분이 경기에서 결과물로 나오지 않으면 경기가 끝난 뒤 피로한 상태에서도 혼자서 연습을 한다.
이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는 시즌 성적에 그대로 나타났다. 테임즈는 올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40(홈런)-40(도루) 클럽에 가입했고 일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사이클링 히트를 두 차례나 성공시켰다. 또 타율(0.381)과 출루율(0.497), 장타율(0.791), 득점(130점) 등 4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고 타점 2위, 홈런 3위, 안타 4위, 도루 5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5위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테임즈 기록 가운데 단연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은 도루다. 47개의 홈런을 기록한 강타자가 도루 부문 5위에 이름을 올리기는 쉽지 않다. 도루를 하나 성사시키기까지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베이스에서 몇 발짝 리드를 했다가 견제구가 들어오면 재빨리 귀루해야 하고 모처럼 타이밍을 잡아 2루까지 갔다고 하더라도 후속 타자가 파울 볼이라도 치면 다시 1루로 돌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로가 쌓이면 타격 페이스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NC 코칭스태프들은 테임즈의 도루를 썩 내켜 하지 않는다. 팀 공격을 이끌고 있는 4번 타자가 도루를 하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치명적인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그래도 테임즈는 달리고 또 달린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테임즈가 내놓은 대답은 이렇다. "지키려고 하면 뒤처진다. 전진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테임즈는 30(홈런)-30(도루) 기록을 달성한 뒤에도 "(그동안 KBO리그에서) 40-40은 없었느냐"며 스스로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끝내 이를 달성했다.
뜬금없이 프로야구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테임즈의 자세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계에서는 위기론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안팎의 상황을 보면 여건이 좋지는 않다. 중국의 저성장으로 수출이 줄어들고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외국인 자금은 국내에서 빠져나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령화 등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내수도 살아나지 않으면서 일자리 창출도 부진하다.
문제는 위기론만 강조할 뿐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가 선진국과 중국 등 후발 주자 사이에 껴 있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자조적인 푸념만 무성하다. 물론 여건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신세타령만 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할 일을 누가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광복 이후 우리 경제가 성장해오는 동안 가장 큰 동력이 됐던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광복 직후 우리 경제에는 뚜렷한 기술도, 훈련된 인력도, 이렇다 할 자본도 없었다.
오로지 잘살아보자는 일념 하나로 오늘날 세계 9대 무역 대국(2014년 기준)을 일궜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자본과 인적자원 등의 면에서 월등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오히려 부족한 것은 난관을 뚫고 나가려는 의지다. 적극적인 의지가 없는 곳에 탈출구는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경제 위기탈출의 해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도전 DNA를 살려내는 것이다.
/오철수 성장기업부장 (부국장) cso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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