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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휴정PD의 Cinessay] 칼보다 무서운 '말'이 불러온 비극

●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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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내가 기억할 수 없는 나의 말'을 마음에 꾹 담아두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말을 한것같지 않은데, 했다하더라도 그런 '뜻'으로는 한 것 같지 않은데 상대방은 부정적으로 기억하고 있을때 정말 몸둘바를 모르게 됩니다. '말이 씨가 된다'며 돌아가신 어머니는 유난히 긍정적인 말을 강조하셨고 저도 나름대로 다정하고 예의바르게 말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제 생각과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온도차이는 꽤 크다는 것을 그럴때 충격적으로 느낍니다. 살아가면서 남들이 무책임하게 내뱉는, 심지어 전혀 사실도 아닌 '말' 때문에 상처 한번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내가 당할 때는 너무 아픈데 타인의 비극과 비밀, 아픔에는 너무도 무심합니다. 베트남 속담에 '칼에는 두 개의 날이, 혀에는 백개의 날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치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살렸다했을까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을 만들고 옮기는 '우리'는 누구를 죽이거나 쓰러뜨릴 목적까지는 없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나의 말이 그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면 누가 그렇게 쉽게 남의 말을 하겠습니까. <올드보이>(2003년작, 박찬욱감독)의 오대수도 자신에게 닥친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말' 때문이었다는걸 상상도 못합니다.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가 인생좌우명이라고 떠들고 사는 오대수(최민식)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납치되어 15년동안이나 군만두만 먹으며 갇혀살게 됩니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을 복기해봐도 아내를 살해했다는 누명까지 써가며 갇혀있을만한 잘못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15년이 지난 어느날, 탈출에 성공한 오대수는 왜 자신이 갇혀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정말 상상도 할수없는 '가벼운 뒷담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날 남녀의 정사를 본 오대수는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합니다. 남녀는 남매간이었고 당사자인 누나는 오대수가 점화시킨 소문에 침몰되어 자살합니다. 소녀의 남동생인 이우진(유지태)은 극단적인 죄의식을 느끼는 한편, 이 모든 비극의 주범으로 소문을 퍼뜨린 오대수를 지목합니다.



이우진의 복수는 치밀하고도 비극적입니다. 자신이 벌인 '사건'은 사라지고 사건이 퍼지게된 '과정'에만 집착합니다. 그래서 15년간 오대수를 가두고 이후에는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주기 위해 '근친상간'의 나락으로 오대수를 빠트립니다. 오대수는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된 혀를 자르고 이우진은 자살합니다.

영화는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메시지는 오래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살아보니 쉽게 비난했던 '남의 일'이 결국 '나의 일'이 될 수도 있고 우주의 기운은 순환하여 내가 말로 지은 죄는 다른 형태로도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지 않아도 좋았을 남의 말을 많이 한 날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힘들 때마다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말' 때문에 다시 일어났고 비수처럼 날카로운 '말' 때문에 쓰러졌었습니다. 새해를 맞았다고 특별한 설렘이나 각오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올해 지켜보려합니다. 쓸데없는 남의 말은 하지 말자..이것 하나만 잘 지켜도 평화롭고 훈훈한 한해가 될 것 같습니다.

조휴정 KBS PD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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