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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틀 만인 1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첫 상견례를 가졌다. 이들 수장은 우리나라 거시정책을 함께 이끌면서도 서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첫 만남에서 누가 기선 제압을 하냐'는 항상 화젯거리가 돼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뚜렷한 승자는 없었다. 원만한 성격의 거시경제 투톱이 내놓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라는 평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통화정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다소 약해질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도 나온다.
이날 유 경제부총리와 이 총재는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오찬회동을 하는 형식으로 만났다. 1년 6개월 전 최경환 전 부총리와의 회동 장소는 같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유 부총리와 이 총재는 배석자 없이 단둘이 만났다. 1대1 오찬은 유 부총리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4년 7월 당시 최 전 부총리와 이 총재는 양 기관의 간부들을 배석시켰다. 최 전 부총리는 압도적으로 분위기를 리드했다. 첫 회동 때문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한은은 다음달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두 수장만 함께한 오찬에서 갓 취임한 유 부총리와 통화정책 방정식이 한층 복잡해진 이 총재 모두 부담을 내려놓고 한국 경제에 대해 좀 더 솔직한 의견교환을 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해외 경제상황이 어렵다 보니 상견례에 그칠 수만은 없다"며 "국내 경제 상황과 전망, 불확실성이 높은 대외여건을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예고했다.
앞서 유 부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해 "전적으로 독립적 결정권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있고 이를 훼손하면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오찬회동 이후 기재부와 한은은 보도자료를 통해 "주요2개국(G2) 리스크, 신흥국 불안에 북한 핵실험까지 겹쳐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며 "정부와 한은은 우리 경제운용의 양축으로 서로 호흡을 맞춰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화를 이뤄나가겠다"고 원론적인 내용을 발표했다.
현장 분위기는 자료내용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이 총재가 BIS회의 출장경험을 얘기하며 "(다른 나라들이) 한국 경제가 괜찮다는 평을 많이 했다"는 발언을 기자들이 재차 확인하자 유 부총리는 "숫자(성장률)로만 보면 미국 다음에 한국이니까"라며 이 총재를 거들었다. 또 이 총재가 "(유 부총리께) 어깨가 무거우시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하자 유 부총리는 "맞다. 기억난다"고 맞장구쳤다.
두 수장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에 대해 유 부총리는 "그런 단계는 아니고. 자주 만나는 건 생각해보겠다"고 한발 물렀다.
물론 두 기관 간 미묘한 신경전은 여전했다. 일부 언론에서 한은이 이날 점심식사 비용을 부담했다고 보도하자 한은은 즉각 "한은과 기재부가 반반씩 식사비용을 부담했다"며 정정내용을 다시 발표했다. /이연선ㆍ김상훈기자 bluedash@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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