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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도롱뇽? 게리맨더링!





‘선거에 반드시 이긴다. 무엇이든 하겠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지금부터 204년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엘브리지 게리(Elbridge Gerry)*가 그랬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그는 선거구 개편을 밀고 나갔다. 목적은 명확했다. 선거 승리. 상원에 진출한 뒤 대권에 도전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당연히 반대가 따랐다. 상대방인 연방파(해밀턴파)는 물론이고 소속 정당인 민주-공화파(제퍼슨파)에서도 무리라는 의견이 나왔지만 뚝심으로 밀어붙여 1812년 2월 11일, 선거구 개편안을 통과시켰다. 선거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뜯어고친 게리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까.

정반대다. 한 달 뒤 치러진 선거에서 게리의 성적은 예상 밖이었다. 5만 829표를 얻는 데 그쳐 5만 2,343표를 획득한 연방파의 케일럽 스트롱에게 주지사 자리를 내줬다. 같은 해 11월의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더욱 큰 패배를 당했다. 의석수가 9 대 8의 우위에서 4대 16으로 뒤집어졌다.

참패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첫째, 미영 전쟁 발발로 연방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영국령 캐나다와 인접한 매사추세츠주에서 먹혔다. 두 번째 참패 요인은 언론에서 나왔다. 게리의 주지사 선거 패배 직후 한 신문이 합성한 신조어 하나와 삽화가 민주공화파의 이미지를 떨어뜨렸다.

친연방파 신문이던 보스턴 가제트는 게리 전 지사가 분할하려던 선거구의 모양새가 도롱뇽(salamander)과 비슷하다며 게리의 이름과 합해 ‘게리맨더(Gerry-mander)’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험악한 모습의 도롱뇽이 매사추세츠주를 감싸고 있는 삽화와 함께 ‘게리맨더’가 활자로 나간 뒤 연방 하원의원 선거는 사실상 끝났다.

당대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게리맨더링은 끈질지게 살아남았다. 옥스퍼드 사전은 게리맨더링을 ‘특정 인물이나 정당의 이익을 위해 선거구를 개편하는 행위’라는 뜻으로 1848년 판부터 실었다. 컴퓨터를 동원한 실험에 따르면 선거구를 나누는 방식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게 일어날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거가 치러지는 곳이면 게리맨더링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심하다. 총선거를 앞두고도 아직 지역별 선거구를 획정하지 못한 실정이다. 군소정당에 대한 투표는 사장되어 버리는 투표 가치 불평등부터 특정인물에 대한 친밀도에 따라 선거구를 바꾸는 웃지 못할 장면들이 한숨을 자아낸다. 선거 승리만을 위한 정신적 게리맨더링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매사추세츠주에는 엘브리지 게리의 이름을 딴 건물과 거리가 남아 있다. 미국 건국에 기여한 공을 기리기 위해서다. 미국 독립선언서 서명자(the signer) 56인 가운데 한 사람인 게리는 비중 있는 정치인으로서도 여러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와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찰스 핀크니, 존 마샬 등과 함께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파견됐을 때, 다른 대표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 정계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찰스 핀크니는 독립 직후 최대 요직의 하나인 주프랑스 대사를 거쳐 대통령 선거에 두 차례 도전했던 거물. 존 마샬은 국무장관을 거쳐 대법원장에 지명돼 미국 사회에 ‘법의 우위’의 전통을 세운 인물이다.

게리도 마찬가지다. 게리맨더링에도 불구하고 주지사 3연임에 실패한 그는 눈길을 백악관으로 돌렸다. 단 눈높이를 낮췄다. 언젠가는 도전하리라 마음먹었던 대권 대신 부통령을 택해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 밑에서 5대 부통령을 지냈다. 게리는 러닝메이트 제도 도입 이후 첫 부통령. 이전까지는 대통령 선거에선 1위가 대통령, 2위가 부통령을 맡았었다.

부통령으로서 그가 남긴 흔적은 크지 않다. 힘도 크지 않은 데다 임기 도중에 죽었기 때문이다. 현직에서 사망한 두 번째 부통령에 해당된다. 최초의 현직 부통령 사망자는 드윗 클린턴. 미국 건국 초기 경제성장을 이끈 사회간접자본으로 평가되는 ‘이리 운하를 뚫는 기적을 만든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현직 부통령으로서 게리의 마지막 업무는 돈과 관련 있었다. 예산 문제를 협의하다 갑자기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순직한 셈인데 만약 게리가 선거구 조정이라는 꼼수를 부리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명성이 더 빛났을지도 모른다. ‘게리맨더링의 원조인 악한 정치인’이라는 오명과 순국한 애국자. 게리의 진면목은 둘 가운데 무엇이었을까. 구분도, 단언하기도 어렵지만 기억의 쏠림 현상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게리는 여전히 악한 정치인으로 기억될 뿐이다. 눈앞의 욕심이 평생 쌓아올린 명예를 쓸어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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