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인 샤프가 결국 대만 폭스콘(홍하이정밀공업)으로 넘어가게 됐다. 샤프가 25일 임시이사회에서 폭스콘이 제시한 7,000억엔 규모의 지원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샤프는 폭스콘 산하에 들어가게 됐다. 일본의 대형 전기전자 업체가 외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결정은 투자에 목마른 샤프가 거액의 지원규모를 무엇보다 우선시한 결과로 풀이된다. 샤프는 폭스콘으로부터 약 7,000억엔을 지원받아 부진한 경영을 회생시키고 폭스콘은 액정 부문의 앞선 기술력을 갖춘 샤프를 인수함으로써 삼성·LG 등 한국 경쟁사들을 따라잡겠다는 전략이 이번 인수 합의의 배경이 된 셈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양사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최종 계약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샤프가 임시이사회에서 폭스콘의 인수제안 수용을 만장일치로 결정했으며 폭스콘이 이르면 26일 보증금에 해당하는 1,000억엔을 우선 샤프에 지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양사는 보증금 입금 확인 후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신문에 따르면 폭스콘은 약 7,000억엔의 지원액 가운데 4,888억엔으로 샤프 주식을 취득해 66%의 지분을 갖고 임원을 파견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머지 지원액은 샤프의 주거래은행이 보유한 우선주 취득, 샤프와 공동 운영하는 대형패널 생산업체인 SDP 자산 취득 등에 쓰이게 된다.
샤프 입장에서는 경영회생에 불가피한 7,000억엔의 대규모 지원액이 폭스콘의 손을 잡은 결정적 요인이 됐다. 당초 샤프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과 3,000억엔 출자를 제안했던 일본 민관투자펀드 산업혁신기구(INCJ) 쪽에 무게를 뒀으나 폭스콘이 지원금액을 대폭 상향하면서 사실상 협상 대상을 폭스콘으로 좁혔다. 계속되는 적자경영으로 신규 투자가 사실상 중단됐던 샤프 입장에서는 액정사업을 살리기 위한 대규모 투자가 무엇보다 절실했다는 얘기다. 당초 샤프 내부에서는 지난 2012년 출자 약속을 번복한 폭스콘에 대한 불신이 컸으나 1,000억엔의 보증금 선지급 조건을 폭스콘 측이 받아들인 것이 결정을 굳히는 배경이 됐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폭스콘은 인수를 성사시키기 위해 '샤프' 브랜드 유지와 태양전지를 제외한 기존 사업 유지, '40세 이하' 젊은 직원들의 고용보장을 약속했으며 기술유출 우려를 고려해 액정기술 특허가 유출되지 않도록 계약조건을 배려하는 등 샤프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자본에 대한 경계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정부 주도의 산업혁신기구가 대주주로 있는 재팬디스플레이(JDI)와 샤프 간 제휴 추진도 검토하고 있다.
폭스콘이 이토록 샤프 인수에 공을 들인 것은 샤프가 보유한 액정기술 때문으로 풀이된다. 애플 아이폰의 3대 액정 납품업체이자 종합 가전업체인 샤프를 인수해 고급 스마트폰의 주요 액정 공급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의 노림수다. 특히 폭스콘은 차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9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삼성디스플레이와의 경쟁구도를 노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번 인수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적지 않다. WSJ는 폭스콘이 샤프의 사업과 고용을 대부분 유지하면서 대규모 손실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폭스콘이 액정사업 투자에 주력할 방침인 만큼 가전 등 샤프의 다른 사업부문에서 시너지 효과가 날지도 미지수다. 제프리스의 아툴 고얄 애널리스트는 WSJ에 "폭스콘은 샤프 사업부문들의 경영 경험이 없다"며 "이번 인수가 큰 이해관계 충돌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