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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또 엉터리 평가...시장 혼란 부채질하는 빅3 신평사

경제난 페루에 ‘A3·BBB+’ 부여

글로벌 금융위기·유로존 사태 등

과거에도 뒷북대응으로 피해 키워





지난해 12월 페루 대법원은 1970년대 좌파 정부가 토지개혁 자금 마련을 위해 발행한 ‘토지개혁 채권’에 대해 과거 물가 상승률과 통화가치 절하를 반영해 재평가하도록 판결했다. 이 경우 채권 가격이 급락하면서 페루 정부의 채무 상환 부담은 줄지만 외국인 투자가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게다가 페루는 주요 수출품인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어 신흥국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최대 취약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소형 신용평가사인 HR레이팅과 에간-존스는 페루 ‘토지개혁 채권’의 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뜻하는 ‘D’로 강등했다. 또 해외통화 표시 국채 등급도 정크(투자 부적격) 단계인 ‘BB’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빅3’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페루의 국가신용등급으로 ‘A3’를, 스탠더드 앤 푸어스(S&P)와 피치도 각각 ‘BBB+’를 부여하고 있다. 포브스는 “페루 사례는 이들 ‘빅3’가 과거 금융위기 때처럼 신용평가에 실패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채권 발행자=평가 대상이자 고객’

모럴해저드 발생하는 구조 갖춰

부채 증가 신흥국도 후하게 분류

◇“뒷북대응, 달라진 게 없다”= 대형 신평사들은 위기의 전조를 미리 알려주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의 저승사자’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을 들은 지 오래다. 과도한 위험자산 투자로 자산 거품이 생겼을 때는 엉터리로 높은 신용도를 부여했다가 막상 위기가 닥친 후에 신용등급을 무지막지하게 떨어뜨리는 바람에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이들 ‘빅3’의 책임이 크다. 사실상 ‘쓰레기 채권’이었던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관련 파생 상품에 최고 신용등급을 매겨 전 세계로 팔 수 있는 길을 제공했다. 심지어 이들은 고객 입맛에 맞춰 고의로 위험도를 낮게 평가하는 불법도 저질렀다. 유로존 재정위기 때도 그리스 신용등급을 뒤늦게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려 사태 악화를 불러왔다.

하지만 각국의 규제 노력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일각에서는 독립적인 인사를 신평사의 이사회 이사로 의무 지명하는 방안을 2010년 발효된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법’에 집어 넣으려 했지만 로비에 막혀 실패했다. 신평사들은 리스크 모니터링 등 새로운 평가 방법을 개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주먹구구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채권 발행자가 평가 대상이자 고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그대로여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신평사들은 브라질, 러시아를 제외하면 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모로코, 필리핀 등 위기에 취약한 국가들마저 대부분 신용등급을 후하게 주고 있다. 이는 월가 투자은행(IB)들이 페루,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위험 국가로 분류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중국 금융시장 요동, 낮은 원자재 가격 지속,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추가 금리인상 등 각종 악재가 부각될 경우 이들 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추락시켜 과거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포브스는 “신흥국은 지난 10년간 기업 부채가 3배나 늘어난 가운데 성장률 하락, 대외부채 상환 능력 감소 등으로 외국인 자금 탈출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신평사의 사전 대응 미흡을 비판했다.

“위기 원흉” 비난에도 위상 건재

美, 진입장벽 규제에 독점적 지위

“세계 금융패권 유지 도구” 분석도

◇무너질 줄 모르는 ‘빅3’ 아성= 이처럼 ‘금융위기의 원흉’이라는 비판이 거센데도 이들의 위상은 건재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빅3’의 신용평가 시장 점유율은 95%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2014년 이들이 신용등급을 부여한 채권은 242만여 건에 이른다. 수익 역시 사상 최고치를 매년 경신 중이다. 10년 가까이 이어진 초저금리 여파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채권 발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금융위기 이전 모기지담보증권(MBS) 부실 판매와 관련해 납부한 벌금만 총 19억 달러에 이르고 앞으로도 13억 달러 이상의 벌금을 물 것으로 예상되지만 영업이나 수익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투자가들이 ‘빅3’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 연방검사이자 변호사인 필립스 하이더는 “대형 신평사는 시장의 일부분이며 필요하다”며 “그들을 해체시키거나 평판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독점적인 지위는 미 금융당국의 진입장벽 규제 덕분이다. 국제 신평사가 되기 위해서는 미 국가공인통계평가기관(NRSRO)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적정 인력 확보 등 각종 제약에다 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2012년 이후 신규 등록된 신평사는 멕시코시티에 위치한 HR레이팅 하나 뿐이다. 이들 ‘빅3’가 미국이 글로벌 금융패권을 유지하고 말 안 듣는 신흥국을 손보기 위한 ‘숨겨진 도구’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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