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돼 실의에 빠진 헤이즐럿데이비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들은 휴 허 교수가 돕겠다고 나섰다. MIT 내에 있는 로봇 공학, 머신 러닝(기계 학습), 생체기계학 전문가들을 불러보아 200일 이상 춤에 대해 연구했다. 연구 자료를 자신이 개발한 전자의족에 내장시킨 뒤 헤이즐럿데이비스의 잘린 왼쪽 다리에 연결했다. 그녀는 TED강연장에서 이 전자의족을 착용하고 남성 댄서와 함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노래 ‘링마이벨(Ring My Bells)’에 맞춰 감동의 춤사위를 선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헤이즐럿데이비스는 “다시 춤을 출 수 있게 돼 흥분된다”면서 “나는 늘 다시 춤추겠다고 결심했고 하고자 했던 것을 알았기에 지금 여기에 있다”고 감격해 했다. 그녀의 춤을 지켜본 휴 허 교수는 “그 무엇도 결코 인간을 굴복시킬 수 없다(A human being can never be broken)”고 힘줘 말했다.
휴 허 교수는 타고난 산악가였다. 196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8세 때 해발 3,544m 높이의 캐나다 템플산을 올랐고 17세에 이미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등반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꿈도 전문 산악인이 돼 아무도 오른 적이 없는 산을 정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운명을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1982년 1월 친구와 함께 뉴햄프셔주 워싱턴산에 있는 헌팅턴 계곡에서 얼음 등반을 하던 중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로 조난을 당해 영하 29도의 혹한에 3일 밤을 보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극적으로 구조됐지만 이미 심각한 동상을 입은 상태였고 결국 양쪽 다리를 무릎 아래까지 절단해야 했다.
이 사고는 휴 허 교수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사고 뒤 일반 의족을 차고 다시 등반에 나섰지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조악한 의족 제품에 실망한 그는 직접 의족을 개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주위의 반응에 고무된 휴 허 교수는 첨단 의족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MIT와 하버드대에서 기계공학과 생체물리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MIT 미디어랩 바이오메카트로닉스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휴 허 교수는 착용할 수 있는 로봇, 즉 웨어러블로봇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휴 허 교수가 개발한 전자의족은 탄소섬유와 티타늄·실리콘을 주재료로 컴퓨터칩과 센서를 내장해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다리에 가해지는 무게와 관절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감지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탑재한 컴퓨터로 제어하는 무릎은 2004년 ‘타임’지가 선정한 발명품 ‘톱10’에 포함됐고 1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할 정도로 전자의족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 해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하인즈상(2007년)을 받는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휴 허 교수가 개발한 전자의족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지만 살아있는 팔다리처럼 움직일 정도로 완벽한 수준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자의족이 몸의 신경체계 및 근육과 상호 소통해야 하는데 휴 허 교수는 최근 센서를 통해 로봇 다리가 감지한 촉감을 뇌로 전달하는 실험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현섭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뇌파를 전자의족에 전달해 생각대로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은 실험실 단계에서는 구현됐을 것”이라면서 “실용화·상용화도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휴 허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전자의족을 일반인에게 보급하기 위해 동료들과 ‘아이워크(iWalk)’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상이군인이나 장애인들이 구입하고 있지만 대당 가격이 수만달러를 호가해 판매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휴 허 교수는 “장애를 입을 경우 일자리를 잃는 등 개인적인 손실은 물론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게 들어간다”면서 “다소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여러 제반 비용을 감안하면 가격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휴 허 교수는 연구개발과 실용화에 몰두하면서도 자신이 개발한 전자의족을 차고 수천m가 넘는 산은 물론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악인으로서의 삶도 이어가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이 2002년 ‘등정:휴 허의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해 방영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휴 허 교수의 연구실 벽에는 “600만달러의 사나이가 되겠다”는 글귀가 붙어 있다. 우주선 추락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군인이 생체기계를 이식받아 시속 60마일의 속도로 달리며 15m를 수직으로 점프할 수 있는 초인이 된 TV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처럼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인체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로봇 팔다리를 개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휴 허 교수가 그 꿈을 언제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서울포럼 2016’에서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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