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이별도 딱 그 사람의 그릇만큼 하게됩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랑도 하는거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는 사람은 ‘아름다운 이별’을 할 줄 알죠. 좋은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희생하는 선택’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카사블랑카>(1942년작,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릭, 일자, 라즐로는 바로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과 이별을 선택한 멋있는 주인공으로 우리의 가슴에 오래도록 남아있습니다.
혼돈의 2차 세계대전 중,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험프리 보카트).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누구의 삶에도 관여하지 않는 차가운 이 남자는 전쟁이나 정치와 상관없이 그저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듯 보입니다. 그렇게 감정에 흔들리지 않던 그가 카페에 들어온 일자(잉그리드 버그만)와 위험에 처한 반나지 지도자 라즐로(폴 헨라이트) 부부를 보고는 얼굴이 굳습니다. 일자는 릭이 한순간도 잊지 못했던 여인이었으니까요. 두사람은 파리에서 열렬히 사랑했던 사이였습니다. 전쟁의 혼돈 속에서 서로에 대해 잘 알기도 전에 빠져들었던 사랑. 전쟁의 위험 때문에 같이 파리를 떠나기로 한 날, 일자는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나타나지 않습니다. 릭의 상심은 너무도 컸습니다. 그래서 릭은 누구도 믿지 않는 냉정한 남자가 되었을겁니다. 이렇게 사랑의 상처가 깊은데, 미국으로 꼭 떠나야하는 두 사람의 통행증은 어쩌다보니 릭의 손에 있는 기막힌 상황이 됩니다. 이제, 일자는 왜 떠났는지 설명해줘야하고 릭은 옛연인의 남편을 도와줘야할지 결정해야합니다.
사실, 일자는 전쟁 중 남편 라즐로가 총살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외로워하고 있을 때 릭을 만났던거고, 둘이 떠나기로 했을 때, 라즐로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던겁니다. 생사를 넘나들어 다시 살아온 남편을 일자는 외면할수 없었습니다. 남편이기에 앞서 정의롭게 살아가는 한 남자로 라즐로를 존경했던 일자였으니까요. 이렇게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비극 속에서 릭만 영문도 모른채 카사블랑카로 왔던 겁니다. 다시 재회한 두 사람은 식지않은 사랑을 확인하고 일자는 이제 릭을 선택하겠다고합니다. 릭의 고민은 깊어지죠. 엘사의 남편 라즐로도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릭의 카리스마에 가려 존재감이 크게 보이지 않지만, 라즐로도 정말 멋진 남자입니다. 아무리 혁명가라도 아내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을 참아내기가 힘들텐데 라즐로는 일자를 이해합니다. 더 나아가 릭에게 아내의 안전을 부탁합니다. 릭과 라즐로. 이 대단한 두 남자는 진심으로 일자를 사랑했기에 모든 선택을 일자 입장에서 합니다. 결국, 릭은 두사람을 탈출시키며 일자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라즐로를 떠날 수 없어,,그리고 우리에겐 파리의 추억이 남아있지”라고.
가끔 생각해봅니다. 일자가 떠난 후, 릭은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까?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 아픈 사람, 라즐로는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일자와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일자는 릭의 곁에 남지 않았음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이에 대한 답도 생각해봅니다. 릭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는 못했겠지만, 일자에 대한 오해가 풀렸고 라즐로를 남자로써 신뢰했기에 예전처럼 마음이 아프지만은 않았을겁니다. 일자는 자주 릭을 그리워하겠지만, 존경하는 라즐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겁니다. 라즐로는 일자를 의심없이, 변함없이 사랑했을겁니다. 라즐로는 정의만 추구하는 정치인이 아닌 가정과 사랑하는 여인도 보호할 줄 아는 진짜 남자니까요. 세사람 모두 제대로 멋진 사랑을 한 셈입니다.
KBS1라디오 <생방송 오늘, 이상호입니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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