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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정치혼란까지 부른 미국 금융자본주의

장면 1: 지난달 26일 미국 최대 정유사인 엑슨모빌은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67년간 유지해온 최고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부채가 문제였다. 엑슨모빌은 주주들의 등쌀에 못 이겨 저유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에도 불구하고 회사채를 발행해 150억 달러 규모의 배당 및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단행했다. 설비 투자는 상대적으로 위축됐고 중기적으로 생산 감소 우려까지 나온다.

장면 2: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아웃사이더’인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 대선 패배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힐러리 캠프는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발목잡기 탓이라지만 힐러리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이 더 많다. 최근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저널(WSJ)마저 “클린턴 후보는 과거 최상위 부유층과 월가를 대변해 왔고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정치 경력을 이용해 0.1% 부유층에 올라섰다”고 일갈했을 정도다.

얼핏 개별 사안들로 보이지만 미 금융 자본주의가 병들어가는 신호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메가 트렌드가 드디어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힘이 세진 금융 산업은 일자리ㆍ투자 감소 등을 불러 실물경제에 부담을 주고 불평등 심화로 사회갈등이나 정치혼란까지 촉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금융산업의 미국 자본주의 지배 현상은 여러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금융권 이익이 모든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82년 10% 미만에서 최근 40% 안팎으로 뛰었다. 반면 금융권 일자리 수는 전체 산업 대비 5%에 불과하다.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제조업체가 미국 모든 산업 이익의 40%를 차지했다.

한마디로 고용 창출 능력도 떨어지는 금융권에 지나치게 많은 부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더 문제는 월가가 제조업 등 일반 기업들과 미 경제의 고혈을 빼내며 성장했다는 점이다. 월가가 보너스 잔치를 즐길 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대다수 미 노동자의 소득은 수십년째 그대로다. 월가가 수익 극대화를 위해 기업 구조조정 압력을 넣으면서 노동자들은 상시 해고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금융산업은 장기 경제 성장에도 방해물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2조 달러라는 사상 최대 현금을 움켜쥐고도 투자나 고용을 꺼리고 있다. 대신 애플, 엑슨모빌 등의 사례에서 보듯 주가부양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 발행 등 오히려 빚을 늘리고 있다.



이 같은 미국 특유의 금융자본주의 모델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양극화 심화와 임금상승 부진에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크게 살아나지 않으면서 미 경제 회복세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가 수익의 중요한 원천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분노한 미국 유권자들이 ‘월가 때리기’에 목말라하고 있다. ‘헤지펀드는 처벌도 받지 않은 살인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나 ‘대마불사’ 관행을 손보겠다는 샌더스에 대한 열광이 단적인 사례다. 반면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힐러리는 ‘월가의 치어리더’에 불과하다.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대대적인 금융규제 완화로 2008년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러 조사에서 2차 대전 후 금융산업의 일시적인 퇴조기는 제조업ㆍ노조에 지지 기반을 둔 민주당 집권기와 대부분 일치한다. 이를 감안하면 부부가 한꺼번에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을 배신한 셈이다. 이 때문에 힐러리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 백인 노동자 등 일부 민주당원들이 트럼프를 찍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부작용에 기존 정당 질서가 붕괴되고 정치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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