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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해운·현대상선 고강도 자구에도 전망 먹구름
세계경제 침체로 운임 줄고 컨선 공급과잉도 심화
SK 발전용 원료 수송 강화·팬오션 곡물유통 개척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주도하는 국내 해운 업계는 우리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이 됐다. 발단은 현대증권 매각 불발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현대증권 매각을 시도했지만 지난달 우선협상대상자인 일본계 사모펀드 오릭스가 인수를 포기하며 자구계획을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이나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가 현대상선을 끌어안는 설이 물망에 올랐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과 현대그룹은 하나같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시장에서는 해운업의 전망이 앞으로도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11일 해운 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지난 2013년 말 고강도 자구계획을 세우고 지난 2년간 재무구조 개선과 원가절감을 통한 경영 정상화에 주력해왔다. 한진해운은 1조9,700억원대 자구안을 내놓은 뒤 벌크 전용선과 터미널 지분매각 등으로 1조9,000억원을 마련했다. 5일에도 한진해운신항만과 에이치라인해운 보유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해 2,500억원을 추가로 확보할 예정이다. 현대상선을 핵심으로 하는 현대그룹은 3조3,000억원대 자구계획을 만든 뒤 '구조조정 모범생'이라 불릴 정도로 성실히 재무구조를 개선해왔다. 액화천연가스(LNG) 운송부문과 현대로지스틱스 등 굵직한 알짜사업을 매각했고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의 유상증자나 외자 유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으로 자본을 확충했다.
자구안 이행에도 불구하고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 각각 750%, 880%로 높은 수준이어서 여전히 끊임없는 재무구조 개선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증권 매각 불발로 현대그룹 자구계획에 큰 구멍이 뚫리자 양대 컨테이너선사 중심의 국내 해운 업계가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현대그룹의 취약한 재무구조가 발단이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해운업 위기가 이번 매각설을 낳았다. 컨테이너 업계는 세계 경기부진으로 물동량이 줄어드는 수요 부족 속에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등장으로 공급과잉이 심해지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가는 컨테이너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6월에 이어 10월에도 TEU(6m 컨테이너 1개)당 300달러선이 붕괴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게다가 1만8,000TEU 이상 초대형 선박이 매년 10~30척이 인도돼 공급과잉은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처럼 해운업의 미래가 어둡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활용한 자구안을 만들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9일 오후 "현대상선 매각계획을 검토 중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만 지었다.
다만 양대 해운사가 비슷한 노선과 선박을 보유한 가운데 각기 다른 해운 얼라이언스(동맹체)에 속해 합병 시너지가 없고 현대상선을 인수할 만한 후보가 있을지도 의문시되는 만큼 현재 양대 해운사 체제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무리한 구조조정보다는 해운사를 위한 선박·금융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윤재 한국선주협회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세계 해운전망 국제세미나에서 "정책금융기관의 선박금융 지원금액이 대부분 해외 경쟁선사에 편중된 만큼 이를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국적선사의 선박 확보 지원에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신규 투자로 연비 효율이 높은 선박을 확보해 기존 선박을 대체한다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회사를 제외한 국내 중소 컨테이너선사나 SK해운·팬오션 등 벌크선 중심의 해운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벌이고 있어 해운 업계 지각변동과 거리를 두고 있다. 양대 컨테이너선사가 대륙 간 운송을 맡는다면 중소형사는 국내나 한중일 노선을 운영하기 때문에 시장 참여자가 제한적이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이익률을 보장받고 있다.
철광석이나 석유제품 등을 실어나르는 벌크선 업계는 화주와 장기계약을 맺기 때문에 일감이나 수익성 걱정에서 자유롭다. SK해운은 그룹 계열사 물량이나 발전용 원료에 대한 장기운송계약을 통해 올해 상반기 63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벌크선 중심인 팬오션은 6월 하림그룹에 인수된 후 글로벌 곡물 유통기업 카길을 모델로 삼고 본격적으로 사업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해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림이 기존 벌크선 업계의 수동적인 운송 역할을 벗어나 유통업 개척에 성공한다면 컨테이너선 중심의 국내 해운 업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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