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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新 풍속도] "주어진 시간은 60분...매력을 발산하세요"

‘점심팅’, ‘커피팅’으로 충분하다는 2030 급증

시간, 돈 절약…메뉴 선택 번거로움도 줄어들어 인기

“면접 보는 것 같다” “진지하지 못하다” 불쾌감 토로도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가성비’가 소개팅의 최우선 기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주말, 저녁시간을 따로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 “바쁘다는 말만 남기고 휙 가버리면 매너 없다고 욕 먹기 쉬워요. 상대방한테는 욕 먹으면 그만이라고 쳐도 주선자 뒷감당은 어떡합니까. 그런데 점심시간이면 다 용서가 되거든요. 만남이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더 성의 있게 이야기도 하게 되더라고요.”

모 금융회사 과장인 김연우(32)씨는 지난 주 세 차례나 소개팅을 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김씨가 1주일에 세 번이나 소개팅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금쪽 같은 점심시간’ 활용이다. 김씨는 “주말이나 저녁 시간을 빼는 건 뭔가 성과를 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부담 없는 만남’이 가능하다는 점을 점심 소개팅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가성비’가 소개팅 장소와 시간을 결정짓는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평일 점심팅’의 경우 1시간이라는 제한시간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단품메뉴를 선택한다는 점, 주말·저녁 시간을 따로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대표적인 장점으로 꼽힌다. 김씨는 시간이 너무 짧지 않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날 저녁 약속을 잡으면 되잖아요. 첫 만남은 ‘간 보기’용인데 상대방이 너무 아니다 싶으면 점심값도 아까운 게 사실이에요. 주변에는 커피숍에서 만나는 경우가 훨씬 많더라고요.”

2030 미혼 직장인들은 사실상 소개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 첫 인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몇 분 이야기 하다 보면 ‘더 만나보고 싶다’ 혹은 ‘아, 이번 만남은 아닌 거 같다’는 결정을 바로 내리기 때문에 첫 만남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대기업에 4년째 근무 중인 이수지(30)씨는 ‘점심팅’이 서로의 주머니 사정을 배려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씨는 “점심에는 기껏해야 밥하고 커피 정도라 돈이 훨씬 조금 든다”며 “직장인 월급이 뻔한데 (상대방이) 밥값을 과하게 쓰면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짧은 점심시간을 감안해 특정지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개팅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테헤란로 직장인들의 소개팅을 주선하는 서비스를 내놓은 김도한 썸팅 대표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과 점심시간을 활용한다는 점이 만남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주변 인맥을 활용한 소개팅은 한정적이기도 하고 눈치 볼 요소도 많지 않냐”며 부담 없는 만남을 원하는 젊은 직장인이 많이 이용한다고 귀띔했다.



중견건설회사에 근무 중인 김현호(27)씨는 같은 이유로 ‘점심팅’보다 ‘커피팅’을 선호하는 쪽이다. 김씨는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잘 맞는 사람인지가 판가름난다”며 시간과 돈 모두 절약할 수 있어 ‘실속 있다’고 표현했다.

첫 만남 장소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서도 커피전문점의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08년 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5만8,318건을 분석한 결과 소개팅 장소 1위는 ‘강남에 위치한 카페’로 나타났다. 상위 20개 장소를 메뉴별로 나눴을 때도 커피전문점 대 음식점은 6:4의 비율로 집계됐다. 부담 없는 만남을 선호하는 20~30대 젊은층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장소·메뉴 선택의 번거로움을 줄여준다는 점도 점심팅과 커피팅의 장점으로 꼽힌다. 점심팅은 인근 지역 종사자끼리 가능하기 때문에 ‘ㅇㅇ역 맛집’, ‘데이트 하기 좋은 레스토랑’을 검색하느라 애먹을 필요가 없다. 이수지 씨는 “자주 가던 식당 중에 적당한 곳을 물색하기만 하면 된다. ‘예약은 남자가 한다’는 공식도 자연스레 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더 잘 아는 사람이 장소를 정하는 게 편하고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 같은 ‘짬 내기 식’ 소개팅에 대해 불쾌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상대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불편하다.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투입시간·비용 대비 효과’를 따지는 세태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통회사에 근무하는 오나은(29)씨는 “남자분이 만나자마자 1시간 뒤에 약속이 있다고 통보를 하더라. ‘3분 안에 매력을 어필하세요’ 코너도 아니고 내가 면접 보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오씨는 “이런 불편함을 토로하면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준다”며 “계산적인 만남이 기준이 되는 것 같다”고도 꼬집었다. 대학생인 김지훈(25)씨도 “커피숍에서 만나서 진짜 커피만 마시고 헤어진 경우가 꽤 많다”며 “상대가 진지하지 못한 것 같아 불쾌했다”고 한다. 그는 “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거면 왜 나왔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짧은 첫 만남’을 선호하는 풍속의 배경에는 팍팍한 경제적 상황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나 중심적’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만났을 때 쓰는 돈, 시간을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곽규태 호남대 교수는 “만남의 과정 자체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부작용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얻는 것만 생각하다가는 잃는 게 더 많을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글·영상편집=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영상제공=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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