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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졸 기술자, 명총 AK-47을 만들다





1947년7월6일, 소련 중부 이젭스크 병기공장. 총기설계자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당시 27세)가 조립 라인을 막 빠져나온 신형소총 한 정을 집어들었다. 누적 생산량 750만정, 개량·발전형(경량화 버전인 AKM, 5.45㎜ 고속탄을 사용하는 AK-74)까지 합치면 1억정이 생산됐다는 AK-47의 첫 생산 순간이다. *

AK-47 돌격소총과 라이벌격인 미국의 M-16소총 시리즈의 누적 생산량은 약 800만 정. 서방제 소총으로는 가장 많이 팔렸지만 AK-47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워낙 많이 깔린 탓일까. 생산 개시 69년이 지나도록 AK-47은 여전히 현역이다. 아프리카 소년병과 중동 테러리스트의 손에는 어김없이 이 총이 들려져 있다. 본가인 러시아도 마찬가지. 개량·발전형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장수 비결은 견고성과 신뢰성. 베트남전에서 늪 속에 파묻혀 녹슨 채 발견된 AK-47의 진흙을 털어냈더니 이상 없이 총알이 발사됐다는 일화까지 전해진다. 총열에 불이 붙었는데도 총알이 연속 발사되는 동영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도 싸다. 아프리카에서는 닭 한 마리 가격으로 살 수 있다고 해서 ‘치킨 건’으로도 불린다.

유지 보수가 쉽고 가격까지 쌌으니 세계로 퍼져나가는 것은 당연지사. 전세계의 개인화기 5억5천만정 가운데 1억정이 AK 시리즈다. 초대박 상품으로 구소련과 러시아는 돈을 벌었을까. 그렇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구소련은 ‘혁명의 수출’을 위해 AK-47을 생산가격 이하로 전세계에 뿌렸다. 이젭스크 병기공장도 1999년에야 특허등록 절차를 밟았다. 러시아는 불법복제되는 AK-47 시리즈로 연간 2조원을 손해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디에서 불법 복제품이 나올까. 일각에서는 구조가 간단해 시골 대장간에서도 제작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어림도 없는 얘기다. 구소련도 프레스 기술이 없어 1950년대 중반에서야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불법복제는 구소련이 생산설비를 제공했던 국가들에서 쏟아져나온다. 자업자득이 아닐 수 없다. 정식으로 면허 생산하는 나라만 24개국. 적성 무기 연구용으로 적지 않은 수량을 보유한 우리나라와 미국 같은 국가를 제외해도 운용국가가 108개국에 이른다.

전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AK-47시리즈가 앞으로도 수십년은 장수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총기 개발이 기술적 한계에 이른데다 완제품과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기에 그렇다. 10~30달러에도 거래될 만큼 차고 넘치는 AK 시리즈로 죽어 나가는 인명이 연간 25만명. AK-47 소총은 핵폭탄과 기관총 등 유사 이래 그 어떤 무기보다 많은 생명을 죽인 단일 무기로 손꼽힌다.

AK 시리즈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더 죽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총을 원하는 수요가 많고, 공급도 끊이지 않으니까. 2005년 개봉작 ‘로드 오브 워(Lord of War)’는 무기 밀매상 유리 오를로프(니콜라스 케이스 분)의 독백에 죽음을 공급하는 구조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세계적으로 5억5,000만 정 이상의 화기가 유통되고 있어. 지구 인구 12명당 한 정 꼴이지. 문제는 나머지 11명을 어떻게 무장시키느냐 거야.’



전설을 써 가는 AK-47에는 떠나간 전설이 하나 더 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AK-47을 설계한 인물이다. AK-47라는 제식 명칭도 자동에서 A, 그의 이름에서 K를 떼어내 첫 생산품이 나온 1947년

과 결합시킨 것이다. 94세라는 천수를 누리고 지난 2013년 하직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공장에서 일하다 독일과 전쟁이 터지자 전차병으로 싸웠던 인물이다. AK-47 소총은 전투에서 어깨 관통상을 입어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구상한 작품이다.

우리 사회라면 중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 청년이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를 러시아 창조적 천재의 상징’으로 꼽았다. AK-47과 쌍벽을 이룬 M-16의 원형인 AR-10자동소총을 설계한 미국인 유진 스토너도 비슷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항공기 제조회사에 다니며 기술을 익히고 해병대원으로 전쟁을 치른 뒤 복귀해 세계적 명총을 만들어냈다. 소총 그 자체보다도 개천에서 천재가 나올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참으로 부럽다.

/논설위원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AK-47이 사상 첫 돌격소총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선보인 STG-44가 돌격소총의 시초다. 좀 더 앞서 개발됐거나 히틀러가 대량생산을 보다 빨리 승인했다면 전쟁의 흐름을 바꿨을 것이라던 명총이었으나 독일의 패전으로 빛을 못 봤다. 결정적으로 생산공정이 복잡하고 획득단가도 높았다. 소련이 한사코 부인하고 작동원리에 차이가 있지만 STG-44과 AK-47의 외형은 놀랍도록 닮았다.

최초의 돌격소총 독일제 Stg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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