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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의 역사 인식

정민정 디지털미디어부 차장

정민정 차장




폴란드 남부에 자리한 작은 공업도시 ‘오시비엥침’은 독일어 ‘아우슈비츠’로 더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광기로 유대인과 정치범·집시들을 독가스로 집단 학살한 비극의 현장이다. 현재 오시비엥침은 ‘아우슈비츠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박물관 정문에 들어서면 “ARBEIT MACHT FREI”라는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뜻으로 나치의 강제 노역을 정당화한 문구다.

이곳 아우슈비츠에만 200만명이 보내졌는데 그중 70%는 도착하자마자 독가스실로 끌려갔고 노동이 가능한 이들은 석탄과 철광석을 캐는 강제 노역에 투입됐다. 전후 생존자 중 한 명은 입소 당시 75㎏이던 몸무게가 25㎏까지 줄어들었다고 하니 참혹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대목은 전후 독일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다. 독일은 나치가 행한 잘못과 과거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했다. 지난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바르샤바 게토 앞에서 비를 맞으며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치 범죄에 깊이 사죄했다. 서방 언론은 “무릎은 한 사람이 꿇었지만 세계는 독일 전체를 일으켜줬다”고 대서특필했다. 통일 독일의 대통령이었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는 “우리 독일인은 세대를 불문하고 과거를 이어받아야만 한다. 현재는 과거의 행위로부터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호소했다. 2차대전 개전 기념식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우리는 과거에 저지른 행위로 이웃 나라에 끝나지 않을 큰 고통을 안겨줬다”고 사죄했다.

더 중요한 것은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일은 나치의 학살과 강제 전쟁 노역에 대한 배상금을 이스라엘·폴란드·러시아·우크라이나 등 주변 피해국들에 지불했다. 배상금 모금에는 독일의 기업과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명단과 금액이 공개됐다. 이것이 바로 독일인이 역사를 대하는 태도이자 잘못된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 인식이다.



하지만 일본은 어떠한가. 과거사 반성은커녕 전쟁 범죄 자체를 부정하고 주변국의 전쟁 기록 등재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 단행한 개각에서는 극우 인사를 국방부와 교육부 장관으로 발탁해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도 모자라 ‘화해·치유 재단(위안부 재단)’에 10억엔(약 107억원)을 출연하는 문제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문제를 연결해 진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유대인 못지않게 전쟁의 피해자였던 폴란드인들은 독일의 지속적인 사죄를 받으며 차츰 마음을 열었고 지금은 미국보다 독일을 더 가깝게 여긴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때린 자와 맞은 자가 있다. 때린 자가 잘못했다고 해야 용서할 수 있지, 맞은 자에게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가 되겠느냐”고. 진심으로 사죄하며 내민 독일의 손을 맞잡은 이유다.

우리 역시 같은 질문을 아베 정부에 던진다.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데 가해자가 아니라고 우기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느냐”고 말이다. 며칠 있으면 광복 71돌이다. 하지만 여전히 피해자들에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큰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끔찍하고도 아픈 기억에서 해방되지 않는다면 광복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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