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계가 저축을 늘리고 씀씀이를 줄이면서 ‘소비절벽’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소비 주축인 30·40대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구조적 소비위축에 대응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한국 가정의 저축률은 3.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8.8%(추정치)로 4년 새 두 배 이상 급등했다. 저축률은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액 비중이다. 한국의 저축률은 OECD 회원국 중 스위스(20.1%), 룩셈부르크(18.5%), 스웨덴(16.0%), 독일(9.7%), 노르웨이(8.9%)에 이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가계소비성향은 2·4분기 70.9%(전국 2인 이상 가정 기준)로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경제가 선순환하는 구조에서는 가계가 은행에 돈을 맡기면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한다. 고용이 늘고 가계의 소득도 불어나 소비와 저축이 동시에 상승한다. 하지만 기업이 투자를 주저하는 현 상황에서 저축은 경제 전반의 소비만 줄이는 역효과를 낸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장한 ‘저축의 역설’이다. 케인스는 개인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저축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하지만 민간소비는 줄어 불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눈앞의 악재가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것이 다음달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경제주체들의 모임이 줄고 선물이 사라지는 차원을 넘어 식당을 중심으로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자영업·제조업 취업자 감소폭을 ‘음식 및 숙박업’이 흡수해 전체 고용시장을 떠받쳤는데 김영란법으로 소매업 고용이 타격을 입으면 소비감소로 연결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올해 2·4분기 전체 취업자 증감폭(28만9,000명·전년 대비)의 39.4%가 음식 및 숙박업 종사자(11만4,000명 증가)였다.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도 소비에 부정적이다. 5월과 6월 각각 20.8%(지난해 대비), 24.1% 급증했던 국산 승용차 내수판매량은 개소세 인하가 종료된 7월 10.5% 급감했다. 앞으로 나타날 승용차 구매 수요가 앞당겨진 것으로 하반기 차 판매 감소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 소비제약요인도 심각하다. 전 연령층 중 가장 왕성한 소비를 하는 30·40대 인구의 감소세가 너무 가파르다. 전체 인구가 오는 2030년(5,216만명)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반면 30대는 2011년(808만9,000명)을 정점으로 이미 인구가 하락하고 있으며 40대 역시 2011년 853만3,000명으로 정점을 찍고 인구가 줄고 있다. 30·40대의 인구 감소 속도는 20대 이상 인구 중 가장 빠르다. 40대의 평균 소비성향은 지난해 75.5%로 전체 평균(71.9%)을 크게 웃돌며 전 연령 중 가장 높았으며 39세 이하도 73.1%로 두 번째로 높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10년간 한국 가계의 소비성향이 장기침체로 내수부진을 겪던 일본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며 “일시적인 소비부양책도 필요하겠지만 근본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수출과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 소비는 부정적인 것이고 저축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며 “비싼 것을 사면 소비세를 과하게 무는 징벌적 제도도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고쳐 소비를 장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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