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전기차용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2차 전지) 생산을 본격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호를 등에 업은 현지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력 분야까지 파고들며 목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업체들은 중국 정부의 보호규제에 묶여 발만 동동 구르는 처지다.
중국 5대 배터리 회사 중 하나인 허페이궈쉬안가오커가 지난 1일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중대형 삼원계 배터리의 생산을 개시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중국 내 1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는 궈쉬안은 상하이전기차(SAIC)와 베이징자동차(BAIC) 등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납품해왔으며 삼원계 양산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에는 장화이전기차(JAC)도 삼성SDI 대신 궈쉬안을 배터리 협력사로 채택했다. 이 업체는 중국 공업신식화부로부터 동력전지 규범조건 인증도 획득해 배터리 업계서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궈쉬안말고도 삼원계 배터리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야디(BYD)를 잇는 중국 2위 배터리 기업인 CATL이 소규모로 전기차용 삼원계 배터리를 양산하고 있고 선전옵티멈·톈진리선 등 2~5위 배터리 기업들이 빼놓지 않고 삼원계와 LFP 배터리를 모두 만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BYD도 삼원계 양산에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안다”며 “몇몇 기업들은 아직 한국 기업들도 양산하지 못하는 리튬에어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덤벼드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니켈·코발트·망간을 양극재로 쓰는 삼원계 배터리는 LFP 방식보다 더 작은 크기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그만큼 기술력도 높아야 만들 수 있다.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회사들은 삼원계를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그간 중국 기업은 LFP가 대세였다.
최근들어서는 중국 업계도 삼원계 배터리가 세계 시장의 표준임을 인식하고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도 삼원계 배터리 탑재를 점차 확대하는 추세다. 중국의 배터리 전문연구기관인 고공산연리전연구소(GGII)는 지난해 약 4GWh 정도였던 현지 삼원계 배터리 수요가 올해 12.5GWh로 껑충 뛸 것으로 예측했다. 오는 2020년이면 90GWh로 급증한다.
문제는 한국 업체들이 중국 정부의 규제에 발목 잡히면서 현지 기업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봐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공신부는 다음달 5차 동력전지 규범조건 인증업체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한국 기업들은 1~4차까지 명단에 들지 못했다. 업계는 중국 정부가 자국산 배터리 기업을 키우기 위해 기술력이 월등한 한국 업체들을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5차 규범조건 인증 획득을 위한 서류를 제출하고 중국 공신부의 발표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한국 배터리 업계 관계자 가운데는 이 같은 규제를 오히려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 정부는 배터리 인증을 통해 우후죽순 난립하는 현지 배터리 기업들의 옥석을 가리려는 의도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시장의 공급과잉이 발생할 ‘싹’을 없앤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에 호재라는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내 배터리 수요는 급성장하는데 엄격한 규제 덕분에 수십 개 업체만 남는다면 한국은 남은 중국 업체와 함께 노다지를 캘 수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중국이 삼원계 기술을 무섭게 끌어올리고 있는 점은 장기적으론 악재인 만큼 기술 차별화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론 이 역시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배터리 인증을 획득한 후에 생각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