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 김모 씨는 최근 독일의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telegram)’으로 메신저를 갈아탔다. 카카오톡으로 대화해야 할 때는 종종 ‘비밀메시지’ 기능을 사용하고 있다. 학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그는 공무원, 기업 관계자 등 여러 분야 사람들과 연락이 잦은 편이다. 이는 어떤 대화 내용이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상에서 문제가 될 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최근 들어 가입한 친구 목록에 학계 사람들이나 공무원들의 이름이 많이 뜬다”며 “아직 법 규정에 대해 혼란스러운 부분이 많아 최대한 신중하자는 차원에서 텔레그램이나 위챗 등 해외 메신저를 선호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3일 다음 달로 다가온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공직자, 교직원, 언론인 등 사이에서 모바일 메신저의 보안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4년 카카오톡 감청에 의한 사이버 검열 논란으로 1차 사이버 망명, 지난 3월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서 2차 사이버 망명의 목적지로 주목받은 텔레그램은 물론 일정 시간 뒤 메신저가 사라지는 ‘스냅챗’, 미국의 오픈 위스퍼 시스템이 개발한 ‘시그널’ 등 등 보안성 높은 메신저가 주목받고 있다. 또 중국에 기반을 둔 위챗 등 외국 메신저의 가입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톡 등 국내 메신저를 사용할 때도 ‘비밀 메시지’ 등 보안 기능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보안 중시’의 원인은 김영란법 상에서 금지하는 금품 수수가 금전 지급·이권 부여 외에도 일상에서 식사를 하거나 사소한 부탁을 하는 상황에서도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규정의 모호성으로 인한 불안 심리에서 나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 건축 허가 등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이모씨는 “일단 돌다리도 두드리는 마음으로 사소한 것이라도 최대한 신중하게 하자는 생각이 있다”며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도 충분히 해석에 따라 법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해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보안을 신경쓰게 된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 백모씨는 “이전에는 일부 부서에서 텔레그램으로 업무 처리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제 메신저 등 보안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도기적 상황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직은 법 자체에 모호한 부분이 많은 게 불안감으로 작용한 것”이라며 “이는 과도기적 상황으로 점차 법이 안착되면 사이버 망명 등 불안감에서 나온 현상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혜진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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