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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초석 놓은 김순기옹 "총앞에 서보지 않으면 전쟁의 잔인함 몰라"

9일 맥아더 장군 헌화식 참석

첩보부대 엑스레이 작전 주도

종전 결정적 기여 '숨은 영웅'

"고생한 부하들 잘 살아줬으면"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영웅 김순기(90)옹이 9일 오전 인천 중구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하려 행사장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내가 먼저 가겠다며 팔미도 등대에 오르던 전우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해요. 총 앞에 서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전쟁의 잔인함을 몰라요.”

66년 전 인천상륙작전에 첩보부대장으로 참여한 숨겨진 영웅 김순기(90)옹이 지난 8일 월미도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참배에 이어 9일 오전 인천 중구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앞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했다. 그는 7일 국제개발협력 비정부기구(NGO) 월드투게더의 초청을 받아 방한했다.

어느새 허리가 깊게 굽은 노병(老兵)은 당시 스물네 살 청년 중위로 두 소위와 함께 팀장을 맡아 17명으로 구성된 첩보대로 작전을 수행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영화배우 이정재의 실제 모델인 셈이다.

작전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1950년 8월 어선을 타고 인천 영흥도로 향했다.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려면 인천의 해안선과 지형, 주둔한 북한군의 현황, 해안 길이, 해로의 지뢰 매설 여부 등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야 했고 특히 입구나 다름없는 월미도의 상세한 정보가 필요했다. 일명 ‘X레이’ 작전의 시작이었다.

동포끼리의 전쟁은 잔인했다. 위험한 첩보활동 중 간혹 적을 마주하게 될 때면 눈앞에 겨눠진 총구가 불을 뿜었다.

변변찮은 무기에 군수물자도 적었지만 김옹은 그저 ‘이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군화가 없어 맨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긴박한 전쟁 속 첩보부대가 활동한 지 19일 만에 철수 명령이 내려왔다. 인천상륙작전 개시 이틀 전이었다.

“부하 3명과 함께 인민군을 격퇴하러 팔미도 등대에 올라간 때가 떠오릅니다. 먼저 올라가려 하니 ‘내가 먼저 가겠다’며 붙잡던 전우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작전은 끝났지만 참혹한 전쟁의 잔상과 전우들과의 추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숨겨진 영웅 김순기(90)옹이 9일 오전 인천 중구 자유공원에서 열린 헌화식에 참석해 맥아더 장군 동상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1963년 중령으로 전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간 김옹은 사치코 여사와 결혼해 지금 교토에 살고 있다.

그 뒤로도 고국을 몇 번 찾았지만 그는 이미 잊힌 영웅이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땅을 밟은 것이 3년 전 일이다.

김옹이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은 월 2만엔(21만원) 남짓이다. 근속 20년이 되기 전 전역해 군인연금도 받을 수 없다.

김옹은 “총 앞에 서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전쟁의 잔인함을 모른다”며 “나를 아껴준 부하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고 고생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오니 젊은 세대가 유쾌하게 잘살고 있어 반갑다”며 “다시 옛날로 돌아간 것 같고 젊어진 기분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인천=장현일기자 hich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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