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금리를 또 동결했다. 기준금리는 3개월째 연 1.25%에 묶여 있다. 1,25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올해 말 가시화할 미국의 금리 인상까지 고려하면 한은이 ‘금리 굳히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8월 들어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는 소비·투자 등 내수지표도 한은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9일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은은 지난 6월 연 1.50%에서 1.25%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한 이후 3개월째 동결 행진을 이어갔다. 이 총재는 “국내 경제가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점, 그리고 가계부채의 높은 증가세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내 정책금리 인상 가능성을 고려했다”며 동결 배경을 밝혔다.
기준금리 인하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가계부채다. 올 초부터 정부가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등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죄기에 나섰지만 증가세는 되레 지난해를 앞지르고 있는 상황. 여기에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들이 제2금융권 등으로 몰리는 풍선효과와 소득심사를 하지 않는 집단대출이 증가세를 주도하는 등 부채의 질마저 나빠지고 있다.
실제로 가계부채 잔액은 2·4분기 기준 1,257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했다. 8월 은행권 가계대출(682조4,000억원)도 전월 대비 8조7,000억원 늘어 월간 기준으로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 총재도 “비은행의 경우 최근 예금이 큰 폭으로 늘면서 대출을 확대하는 영업전략을 펴고 있고 부동산 임대 관련 개인사업자 대출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동향을 예의 주시하겠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다만 이 총재는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8·25 가계부채 관리 방안으로 “가계부채 급증세가 어느 정도는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시화한 것도 한은이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이 총재는 “이론적으로 보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가 신흥시장국으로부터의 자금 유출 위험을 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우리나라 기준금리의 실효 하한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미국의 기준금리가 오르면 한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7월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로 인한 ‘소비절벽’을 딛고 일어선 내수지표도 한은을 겨냥한 금리 인하 압박을 줄이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개별소비세 인하 종료로 감소했던 소비, 그리고 설비투자가 8월에는 반등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종합적으로 볼 때 7월 전망(2.7%)에 부합하는 성장 경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사태가 우리 수출 등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도 제한적인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이후 해상운임이 상승하거나 운송 지연으로 수출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가 대체선박 투입 등 여러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제반 조치가 원활히 진행되면 거시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범위에 머물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 전망치는 당초 예상했던 1.2%보다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물가 면에서는 전기료 한시 인하 등으로 하방 리스크가 분명히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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