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조정’이라는 새로운 금융정책을 도입한 일본은행(BOJ)의 결정은 지금까지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환율을 움직이려 했던 아베노믹스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BOJ의 양적완화 정책을 앞세워 ‘엔저에 기반한 호황’과 ‘적정 수준의 물가상승’을 노렸던 아베 정권은 지난 3년 반 동안 헛 힘만 썼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게 됐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1일 “BOJ의 총괄검증을 통해 여러가지 문제가 검토될 것”이라며 “정부는 BOJ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 구조개혁 등을 총동원해 아베노믹스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나가 돼 움직이겠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날 BOJ의 총괄검증을 앞두고 나온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은 최근 언론과 학계 등을 중심으로 ‘아베노믹스가 목표한 중장기 경제계획에 대한 확신이 점차 사라지는만큼 그간의 공과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BOJ는 그간 일본 정부와 합을 맞추며 아베노믹스의 핵심 주체로 기능해왔다. 엔저에 의존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특성상 BOJ가 금융정책을 활용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 연출되는 일이 잦았다. 한때 ‘외환의 프로’로 칭송받던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중앙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수단을 모두 시도하며 엔화의 가치를 끌어내리려 애썼다. 우선 국채매입 규모를 두 차례에 걸쳐 넓히면서 본원통화량을 연간 270조엔까지 끌어올렸다. 실제로 이 판단은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쳐 2015년 6월에는 엔달러 환율이 평균 123.7엔까지 올랐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기 둔화세가 깊어지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등에 다시 엔고 기조가 시작되면서 BOJ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마이너스 금리의 도입이나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 등으로 매입 규모와 대상을 확대한 노력도 아베노믹스의 발판이 되는 엔저를 달성하지 못했다. 올 들어 달러 대비 엔화가치는 18.5%나 뛰었다. 물가 상승률도 연 -0.4%를 기록하며 디플레이션 우려도 없애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수출기업의 매출을 키워 내수를 진작하고, 경기 전반에 돈이 돌게 하겠다는 아베노믹스의 구상은 위태로워졌다.
이 가운데 같은 날 발표된 8월 무역수지는 엔고 기조가 일본 경제의 활력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본 재무성은 일본의 8월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6% 떨어져 ‘탈 엔저화’가 본격화한 지난해 10월부터 11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8월 무역수지는 187억엔 적자를 기록, 석 달 만에 적자로 전환했다. 다만 경기 활력을 가늠하는 지표 중 하나인 실업률은 지난 7월 3.0%까지 떨어졌고 유효 구인 배율은 1.37배까지 올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고령화의 영향으로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인구(15~64세)가 급격히 줄어 나타난 착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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