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여년 전에 나온 고대 그리스 비극이 아직도 수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등 이야기 산업의 모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22일 영등포평생학습관에서 열린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 강좌 ‘고전의 잔혹한 지혜: 그리스 비극의 세계’ 첫 시간. 강의를 맡은 박준용(사진) 연극평론가는 객석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극악무도한 비극은 고대 문명의 탄생과 인간의 본질에 닿아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고전 인문학 아카데미로 올해 4년째다.
박 평론가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같은 주제로 저자가 여럿인 이유 등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풀어나갔다. “요즘은 새롭지 않으면 관심조차 받기 어렵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게 마치 불문율처럼 되어있었어요. 모르는 혹은 새로운 이야기로는 관객을 이해시킬 수 없다고 믿어 같은 제목이지만 작가가 여럿이랍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등 유명한 작가들이 있었죠. 또 줄거리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관객이다 보니 뻔한 이야기가 흐르는 중간에 허를 찌르는 대사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하기에 수사나 플롯 등이 발전했어요.
그는 고대 그리스 비극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인류의 사상적 원형이 비극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그와 유사한 사건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인생과 가장 닮아 있어서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죠. 또 그 비극은 삶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관객들에게 답을 요구한답니다. 연속되는 삶의 고통을 풀어내는 실마리도 거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겠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인생의 고난과 고통에 대해 묻고 답하면서 반성과 성찰을 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그리스 비극에 담겨있답니다.”
그는 서양에서 비극이 꽃피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나라가 번영을 이루던 시기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대 그리스와 영국에서 비극이 번성했던 시기는 두 나라가 풍요로웠던 때였습니다. 이른바, 잘 나갈 때에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위기 상황을 대비하라는 교훈을 비극에서 찾은 것은 아닐까요. 한가지를 더 보태자면 비극을 만났을 때 정면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비극이지만,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외면해 버리고만다면 언젠가 유사한 비극이 또 찾아온다는 점을 2800여년 전에 씌여진 고전은 말하고 있어요. 개인은 물론 한 사회 더 나아가 한 국가의 비극도 마찬가지랍니다. 비극은 언제 터질지 모르지만 터져버린 비극에 대처하는 방법은 원인에 대해 확실하게 따지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불행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한 달 간 열리는 이번 강좌는 1강 막장 드라마는 왜 ‘고전’이 되었나, 2강 비극의 원천 아트레우스 가문의 저주, 3강 잔혹복수극 오레스테스 3부작 읽기, 4강 미스터리 추적 패륜 드라마 외디푸스 왕 등 4강으로 구성됐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는 고인돌 강좌의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포털 에버러닝(everlearning.sen.go.kr)을 참고하면 된다. 강좌는 무료이며, 신청은 해당 도서관으로 문의하면 된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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