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출발점인 학교부터 제 삶은 멈춰버렸어요”
경기도의 한 탈북민 대안학교에서 중학교 검정고시 과정을 받고 있는 22살 청년 이은수(가명)씨의 토로다. 능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목숨을 걸고 넘어왔지만, 그가 부딪친 남한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탈북민이기 때문에 받았던 ‘손가락질’ 보다 나이 어린 남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면서도 성적은 번번이 뒤에서 맴돌던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이 더 컸다.
탈북 학생들은 지난 2007년 687명에서 2016년 2,491명으로 10여년만에 3배 이상 늘었다. 매년 꾸준하게 탈북 학생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차갑기만 하다. 정부는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 ‘남과 북을 잇는 가교’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탈북학생의 특수한 배경을 감안하지 못한 정부의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금전적 지원이 미래의 남북 가교가 될 이들 청소년을 교육의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 너무 이른 선택이 그들의 ‘인생’을 가른다
20살에 북한 강원도에서 넘어와 경기도 평택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북한이탈주민 전형’으로 서강대에 입학한 김낙연(가명·26)씨는 탈북 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으로 학교 선택을 결정하던 때를 꼽았다. 탈북 학생들은 입국 후 3개월의 하나원 기초 교육 기간을 마치면 북한에서 얻었던 학력, 이수 정도 및 연령을 고려해 학력인정심의 절차를 거친다. 학력심의위원회는 학교급별 졸업자격을 심의하고, 이후 학년배치는 학교장이 결정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일단 배치가 완료된 학생들은 남한 학생과 함께 정규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하지만 북한과 너무나 다른 어휘 체계와 교육 과정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 학생들이 많다. 2014년 교육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탈북 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은 2.5%로 일반학생의 학업중단율 0.93%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김씨는 “남한 교육과정에서 중요한 수학과 영어는 북한에서 배웠던 수준보다 훨씬 높아 당황했다”며 “정말 열심히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공부해 온 남한 친구들을 따라잡기는 어려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탈북 학생들이 많았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탈북 학생들의 학업에 지장을 주는 것은 언어나 경험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탈북 학생 이기열(가명·23)씨는 “담임교사나 내 출신을 알고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북한 출신이라는 것이 ‘커밍아웃’ 됐을 때부터 ‘왕따’가 시작됐다”며 “친구들이 옷깃만 스쳐도 마치 오물이 묻은 것처럼 행동하는 등 수치스러운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탈북민 학생들은 북한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겪는 차별 때문에 학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정규 교육 과정이 힘든 탈북 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대안교육시설을 찾는다. 교육부 ‘2016년 탈북학생 주요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6년 4월 기준 전국의 전일제 대안교육시설에서 171명의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서 11년째 탈북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신동 생활부장은 “재북 및 탈북과정에서 교육적 공백이 크고 심리적 트라우마를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이라 세심한 배려와 주의가 요구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고 학급당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과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해 안타깝게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일반 학교에서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공부할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조금만 더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성격도 밝아지고 교과 성적도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탈북 학생이라고 모두 같은 탈북 학생은 아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공부하고 있는 탈북 학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북한에서 출생해 오롯이 그 가치관을 가지고 입국한 ‘북한 출생 탈북 학생’과 부모가 탈북해 중국 등 제3국에서 나고 자라 남한으로 입국한 ‘제3국 출생 탈북 학생’, 남한에서 출생한 탈북 학생으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남한 입국과 동시에 재교육이 절실한 부류는 북한 출생 탈북 학생과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이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두 부류는 남한 적응 과정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탈북 학생들의 남한 적응을 돕고 있는 허수경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초기지원팀장은 “대체로 북한 출신 탈북 학생들은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보다 우리말을 잘 구사하기 때문에 초기 적응은 더 빠른 편”이라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북한 출신 탈북 학생에 비해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연령이 어려 우리 문화를 흡수하는 정도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몇 해전부터 탈북 학생 중 제3국 출생 학생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1년 전체 탈북 학생의 36.2%에 불과하던 제3국 출생 비율이 지난해 50.5%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늘어난 학생 수만큼 이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과정과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하지만 교육 실정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치관이 다른 두 집단을 ‘탈북 학생’으로 뭉뚱그려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다 보니 직접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불만 또한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일반 학교 교사는 “탈북 학생마다 탈북과정에서의 교육 공백 기간, 개인 특성, 가정환경 등에 따라 교육 과정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천차만별”이라며 “교과 과정상에서 이들의 특성을 고려해 가르칠 수 있는 ‘맞춤형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제3국 출생 탈북 학생들의 위치도 교육적으로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제3국과 대한민국의 국적을 모두 가진 ‘이중국적자’가 많은 제3국 출생 탈북 학생의 경우 국적 선택에 대한 고민이 깊다. 군 문제 등 한국 국적을 가질 경우, 치러야 하는 의무에 비해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적다는 생각 때문이다. 북한 출신 탈북 학생들과 달리 대학 등록금 지원이나 특례 입학 대상자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어렵게 들어온 부모의 나라 ‘대한민국’의 국적을 버리고 제3국 국적을 유지하는 탈북 학생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제3국 출생 학생들을 위한 지원책과 교육 지원 시스템이 보완돼야 한다. 북한 출생 탈북 학생들에 비해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갖춘 특성을 활용해 이를 진로에 연결 시킬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 탈북 학생, 교사, 학부모 관계 회복이 우선
탈북 학생들의 교육 문제는 학교와 교사, 교육 당국의 문제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탈북민의 월 평균 소득은 147만 1,000원에 불과하고 전체 탈북민 중 32.6%가 단순 노무 종사자다. 이렇다 보니 탈북민 부모는 자녀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가 없다. 자녀의 교육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인 탈북 학생의 상황상 높은 학업 성취율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홀로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탈북민 김명자(가명·49)씨는 “저녁 9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아이들 공부나 학교 생활을 봐주기 힘들다”며 “아들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꾸 소통이 안되고 공부도 포기하려고 해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결국 부모와의 소통이 부재한 탈북 학생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학업 성취 의욕도 자연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지원센터 주도로 ‘NK교사’를 양성해 일선 학교에 파견하고 있다. 북한에 있을 때 대학이나 중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했던 교사들을 모아 한국교육개발원 산하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NK교사아카데미를 열어 NK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탈북 학생의 교과 과정의 이해를 돕고 탈북민 학부모와 학생, 학교 사이의 중재자로서 이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취지다. 2010년 최초로 도입돼 시행 6년이나 됐지만 아직 많은 학교에 도입되지는 못하고 있다. ‘NK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경옥 인천동방초등학교 교사는 “처음 교육을 마치고 학교에 왔을 때, 방과 후 탈북 학생들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느껴 ‘한빛교실’이라는 방과후 교실을 제안했다”며 “방과후 교실에서도 친구를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 마음에서부터 기다려야 그들이 먼저 다가온다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국 체제 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한 학생과 달리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입국하는 탈북 학생들은 어느 정도 가치관이 갖춰진 후 입국하기 때문에 그들이 바뀌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탈북 학생 대안학교 ‘하늘꿈학교’의 한 교사는 “심적 부담감이 덜해지면 충분히 자기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학생들이 많다”며 “조금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천천히 적응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반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 교사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최 교사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한 학생이 있었는데, 무조건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 생각했다”며 “천천히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옆에서 관심만 가져줬더니 지금은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괜히 찾아와 ‘선생님 물 떠드리러 왔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은 지원 제도가 좀 더 학생들의 활동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도 입을 모았다. 여명학교 김신동 생활부장은 “남한 기초 수급자들에 비하면 지원금액 자체는 많아 보일지 모르나 사회적 지지기반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에 같은 금액을 받아도 부족할 수 있다”며 “또한 직접적이고 단순한 금전적 지원을 넘어서 탈북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습 및 생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대한 재정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으며, 정서적 학습적 지원이 동반되는 취업까지 이어질 수 있는 장학 제도의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종호기자 정승희인턴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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