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 먼 데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오듯

이상국 作





어느 해 봄 그것도 단 한 번

신을 짝짝이로 신고 외출을 한 다음부터

나는 갑자기 늙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진 않았지만

햇살 좋던 봄날 아침의

아무것도 아닌 실수였는데

그 일로 식구들은 나의 어딘가에서

나사가 하나 빠져나갔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장에 나가는 염소처럼 뻗디디며

한동안 혼자 뿔질을 해대던 나는

어느 날 마당에 나뭇짐을 벗어놓듯

먼 데 어머니 심부름을 갔다 오듯

그 속으로 들어갔다

아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상 심부름 나오긴 했는데 무얼 주고 오라는 것인지, 받아오라는 것인지. 사립문 밖 나간다는 것만으로 즐거워 앞발이 뒷발을 쫓아오는지, 그림자가 벗겨졌는지, 발목에 걸렸는지 아무래도 좋았다. 꽃이 피면 앉아 웃고, 나비 보면 일어서 춤추었다. 소낙비에 젖기도 했지만 무지개 좇아 굽이굽이 산 넘고 물 건너왔다. 무얼 주고 무얼 가져갈까? 나는 늙고 너는 어려 신발 짝짝이로 신는 아가야, 팔십 년 심부름 새로 나왔구나!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