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위안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기반통화 편입 이후 발표한 첫 고시환율에서 가치가 대폭 절하되며 6년래 최저치로 추락했다. 달러에 맞서는 통화굴기를 꿈꾸는 중국이 선진국 엘리트통화클럽에 가입하자마자 위안화 가치가 곤두박질하는 굴욕을 당한 셈이다.
버팀목으로 지목됐던 달러당 6.7위안이 무너지자 위안화에 걸었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이후 파운드화 대체화폐에 대한 기대감이 확연히 꺾이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SDR 편입 이후 큰 폭으로 화폐가치를 내린 것은 녹록지 않은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며 위안화 약세론에 무게가 더 실릴 것으로 관측했다.
인민은행 산하 외환교역센터는 10일 위안화 가치를 달러 대비 0.34% 절하한 6.7008위안에 고시했다. 이날 인민은행의 위안화 고시환율은 지난 2010년 9월 이후 6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인민은행의 위안화 환율 고시는 국경절 연휴(10월1~7일) 때문에 지난달 30일 이후 10일 만에 이뤄졌다.
중국 당국은 이달 초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을 앞두고 그동안 달러당 6.6위안 수준에서 환율을 지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SDR 편입 전 급격한 위안화 약세를 허용할 경우 위안화 변동성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을 의식하며 사실상 환율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 의견이다. 하지만 SDR 편입 이후 첫 거래일에서 위안화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시장은 중국 당국이 위안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데다 9월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188억달러 감소하며 3조1,664억달러로 7월 이후 3개월 연속 줄어든 점이 중국 당국의 환율정책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중국 온라인매체 텅쉰망은 “SDR 편입을 앞두고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절하 방어에 많은 외화를 쓰면서 외환보유액이 5년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며 “최근 금융 시장에서 외환유출 우려가 높아진 점이 위안화 절하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12일(현지시간)로 예정된 9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 공개와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의 연설(14일)을 앞두고 달러화 강세가 예상되는 점도 위안화 절하 압력을 키웠다.
수출부진에서 비롯된 중국 경제의 둔화 추세도 위안화 약세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8월 달러화 기준 중국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2.8% 감소하며 5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감소율의 폭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지만 둔화 추세인 중국 경제 성장률을 돌려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중국 당국이 이날 위안화 절하 고시를 기점으로 위안화 약세를 사실상 용인하거나 조만간 수출실적을 위해 큰 폭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민은행이 그동안 6.7위안을 기준선으로 투기세력 공세에 맞서왔다면서 심리적 지지선인 달러당 6.7위안이 무너져 위안화 약세 압력이 가중될 것으로 관측했다.
시장에서는 13일 발표되는 중국 수출입 실적이 위안화의 추가 약세를 결정짓는 방향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9월 중국의 수출이 전년 대비 3.3% 감소해 8월보다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중국이 힘겹게 SDR 바스켓에 편입되면서 위안화 통화굴기의 시동을 건 만큼 급격한 변동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6일 IMF 연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을 방문, “위안화의 탄력성을 높이고 환율 안정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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