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세계를 뒤바꿀 혁신 기술로 꼽히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에 대한 전 세계적인 개발 경쟁과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이 잇따르고 있고 미국에서는 이 기술을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제작하기로 했다. 한국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둘러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바이오헬스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의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지난 19일 기업공개(IPO)를 통해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주당 14달러로 400만주의 보통주를 발행해 총 5,600만달러(약 630억원)를 모집했다. 이 회사는 IPO와 별개로 기존 주주인 독일 제약사 바이엘로부터 3,500만달러(약 400억원)의 투자를 추가로 받았다. 이번에만 1,000억여원의 자금을 확보한 셈이다.
크리스퍼 업체의 나스닥 상장은 올해만 세 번째다. 앞서 미국의 에디타스 메디신과 인텔리아 테라퓨틱스가 올해 초 나스닥에 상장했다. 인텔리아는 1억800만달러(약 1,220억원), 에디타스는 9,440만달러(약 1,070억원)를 IPO를 통해 유치했다. 이로써 세계적으로 크리스퍼 원천기술을 보유한 4개 기업은 모두 IPO에 성공하게 됐다. 한국의 툴젠은 코넥스 시장에 상장돼 있다. 크리스퍼 기술은 바이엘·노바티스·아스트라제네카 등 다국적 제약사도 기술 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크리스퍼는 문제가 있는 유전자만을 잘라 교정하는 기술로 의료·식품 산업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평가받는다. 가령 인체에 유익한 활동을 하는 화학물, 단백질 등을 주입하는 개념인 기존 치료제는 해당 물질이 일정 기간 지나면 몸을 빠져나가 치료에 한계가 있는 데 반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치료에 적용하면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 자체를 교정, 수술하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또 영양가가 대폭 개선된 식물, 동물을 만들 수도 있다. 크리스퍼는 기초 기술만 있을 뿐 치료제 등은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폭발적인 잠재력 때문에 벌써부터 치열한 개발 경쟁과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마켓앤마켓은 크리스퍼 시장 규모가 2021년 55억달러(약 6조2,3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크리스퍼 기술은 미국에서 드라마로도 다뤄질 예정이다. 미국 사이언스지 등에 따르면 NBC는 최근 크리스퍼 기술을 소재로 한 드라마 ‘C.R.I.S.P’ 제작 계획을 밝혔다. 인기 가수 제니퍼 로페즈도 제작에 참여한다. 드라마는 크리스퍼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테러 범죄를 다룰 예정이다. 크리스퍼에 대한 관심이 제약업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도 바이오벤처 툴젠이 크리스퍼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툴젠은 에디타스(MIT)와 함께 크리스퍼 관련 특허까지 확보한 유일한 기업이다. 툴젠은 한국에서, 에디타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특허가 등록됐다.
하지만 경쟁사가 미국·스위스 등 제약 강국인 탓에 기술 개발 자금 등을 확보하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크리스퍼의 잠재력과 우리나라가 제약 시장에서 상대적인 약소국인 점을 감안하면 국가적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문 툴젠 대표는 “세계적으로 크리스퍼 개발 경쟁이 치열하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기술 개발, 투자 유치 등에 속도를 낼 것”이라며 “두 차례 무산됐던 코스닥 이전 상장도 올해 말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