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하나 남은 원양 국적선사인 현대상선을 초대형화하기로 했다. 약 6조5,000억원의 금융지원을 통해 현대상선을 포함한 국내 선사들의 덩치를 키워 글로벌 치킨게임에서 살아남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최대 해운사 한진해운의 붕괴로 기반이 훼손된 국내 해운산업의 체질을 회복하기에는 부족한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31일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제6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사실상 하나 남은 글로벌 국적 해운사인 현대상선을 초대형화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됐다. 글로벌 해운 시장은 덴마크 머스크라인과 스위스 MSC, 프랑스 CMA-CGM 등 ‘해운 공룡’을 중심으로 한번에 화물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선박을 늘려 운임단가를 낮추는 치킨게임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 양대 국적선사(한진해운·현대상선)는 업황을 잘못 읽고 초대형 선박 발주 시기를 놓쳐 원가 경쟁력에서 밀렸고 비싼 돈을 주고 배를 빌려 경영하다 결국 한진해운은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 현대상선은 채권단 자율협약이라는 길로 접어든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이번 대책은 선사 대형화와 비용 절감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는 현대상선이 초대형 선박을 확보할 수 있게 지원할 선박신조 지원 프로그램(선박펀드) 규모를 당초 12억달러(약 1조3,000억원)에서 24억달러(약 2조6,000억원)로 두 배 확대할 방침이다. 이는 1만3,0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 20척을 발주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에 더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분 80%를 투자해 자본금 1조원 규모의 한국선박회사도 설립한다. 이 선박회사는 현대상선 등이 소유한 선박을 시장가격으로 인수해 다시 낮은 가격에 재용선할 계획이다. 캠코도 선박펀드를 오는 2019년까지 1조9,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중소선박 매입·재임대에 나선다. 선박 재임대를 통해 현대상선의 지출 가운데 가장 큰 용선료 부분을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글로벌 항만 인프라 확보에도 나선다. 선박펀드를 활용해 한진해운이 가진 글로벌 주요 항만 터미널 인수에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해양펀드로 2020년까지 1조원 규모로 확대해 선사가 터미널과 항만 장비 등 자산을 매입하는 데 지분을 공동 투자할 방침이다. 또 한진해운 붕괴로 국내 항만의 환적 물동량이 줄어들 상황을 우려해 국내 항만 이용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가 해운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미 정부와 채권단은 한진해운 경영진과 자구안을 두고 힘 싸움을 하다 국내 최대, 세계 7위 규모의 선사를 잃었다. 한 대학교수는 “세계 7위, 미주항로 3위 규모의 국내 최대 선사를 법정관리를 보낸 후 (한진해운보다) 규모가 더 작은 회사에 수조원을 들여 덩치를 키우겠다는 대책”이라며 “글로벌 영업망이 부족한데 선박 덩치만 키운다고 현대상선이 세계 상위권 해운사가 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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