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일자리가 도시경쟁력이다] <2> 그린벨트 풀어 창업천국 만든 길포드

쇠락하던 英 소도시 '스타트업 요람' 탈바꿈… 런던 못잖은 富村으로

길포드 사진2
영국 서리주 길포드시에 있는 버스 제조사 알렉산더 데니스(Alexander Dennis bus) 공장에서 직원들이 버스 섀시(차대)에 들어가는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길포드시는 녹지대를 창업·연구단지로 적극 개발해 일자리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고 있다. /사진제공=블룸버그

市, 그린벨트 28만㎡ 파격 해제… 그 자리에 '서리혁신단지' 조성

'셋 스퀘어드' 등 지원 프로그램 우수한 창업 생태계 구축 결실

스타트업 등 입주기업 200여곳 한해 市GDP 25% 1조 수익 올려

화이트칼라 일자리 3,500개 창출… 대·중견기업 몰리는 선순환까지


런던 워털루역에서 남서부행 열차를 타고 40분을 달리면 푸른 들판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길포드(Guildford)시. 서리주(Surrey County)의 주도(州都)로 인구는 14만여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대도시 못지않게 활력이 넘친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빈 택시를 잡기 힘들 정도로 지역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작은 도시에 활기가 생긴 건 서리 혁신연구단지(Surrey research park) 덕분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영국의 혁신단지의 70% 이상이 대학이 자율적으로 주도해 조성했다면, 국내는 대기업 주도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길포드시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느 조용한 중소 도시에 가까웠다. 서리주 전체 면적의 73%가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보니 큰 개발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 집은 좁더라도 앞마당은 넓게 가져야 한다'는 영국인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시에서도 굳이 주민반발을 무릅쓰고 개발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주민도, 공무원들도 파격을 원치 않다 보니 시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젊은층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런던으로 빠져나가는 행렬이 이어졌고, 길포드는 주도로서의 기능만 할 정도로 왜소하게 변했다.

그러던 중 1981년 파격적인 제안이 들어왔다. 지역 대학인 서리대학(University of Surrey)이 그린벨트를 일부 풀어서 혁신연구단지를 조성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린벨트 규제로 추가 개발이 어려우니 굴뚝산업이 아닌 연구개발(R&D)에 기반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집적·육성하면 일자리를 창출하면서도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시 당국은 격론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월드컵 경기장 다섯 개를 합친 면적에 달하는 28만여㎡의 그린벨트를 해제, 혁신연구단지 조성을 승인했다. 이대로 두면 일자리는 줄고 청년들이 떠나 도시의 활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오랫동안 금기시했던 그린벨트 해제라는 '파격'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길포드시의 선택은 국내로 치면 북한산을 깎아 연구단지를 만들자는 것보다 파격이었다. 반발하는 주민들은 공무원들이 직접 설득했다.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개발이익을 기업들이 가져가는 게 아니라 지역에 고스란히 남을 것이라며 일대일로 만나 설득했다. 14만명의 주민을 만나고 대학과 기업, 시가 머리를 맞대고 종합 계획을 세우는 데만 꼬박 3년 남짓 걸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현재 혁신단지에는 스타트업 69개와 대기업 연구개발(R&D)부서, 중견기업 등 150여개가 들어차 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정도로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모여있는 셈이다. 혁신단지가 만들어 내는 '화이트칼라' 일자리만 3,500개에 달한다. 특히 이곳에서 개발된 기술을 기업에 이전하거나 스타트업 등이 창출하는 수익은 한 해에 6억2,500만 파운드(1조 800억원)에 달한다. 길포드 지역총생산(GRDP)의 25%를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혁신단지가 지역의 경제적 성장도 견인해 작년 길포드의 1인당 가처분소득 2만 3,672파운드(한화 4,112만원)으로 런던(Inner London) 다음으로 높았다.

서리 혁신단지는 영국에서도 가장 경쟁력 있는 단지에 이름이 오를 정도다. 실제 지난해 105개 혁신연구단지의 연합체 성격인 '혁신연구단지협의회(UK Science Park Association)'로부터 경쟁력 대상(Award for Most Successful Innovation Environment)을 받기도 했다. 서리연구단지의 설립자인 말콤 패리(Malcolm Parry) 원장은 "큰 제조업도 없는 소도시가 런던과 버금가는 생활 수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영국 전역의 스타트업이 몰려들고, 이 영향으로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들도 찾아오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잘 만들어진 창업생태계 때문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스타트업은 대기업에 지분을 팔아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후 다시 이곳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선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3대 게임 개발자 피터 몰리뉴(Peter Molyneux)도 첫 창업 기업을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에도 이곳에서 총 3번을 창업해 모두 대박을 터트린 전설로 꼽힌다.

서리 혁신단지의 성공에는 파격도 파격이지만, 소도시가 창업도시로 성장하게끔 만든 디테일도 숨어 있다. 전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꼼꼼한 창업지원시스템이다. 창업지원 보육센터인 서리테크놀로지센터는 창업 후 5년간 '영아단계' '유아단계' 등으로 나눠 투자, 법률문제 등을 집중관리한다. 영국 정부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인 '이노베이트UK(Innovate UK)'가 창업 1단계 기업을 3∼4단계로 안착하게 돕는다면, 서리단지의 강점인 '셋 스퀘어드(Set Squared)' 프로그램은 이 단계 이후에도 성장시기에 맞는 지원을 한다. 어미새가 새끼가 자립할 때까지 모이를 물어다 주는 것과 흡사하다. 시 상공회의소에서도 지역 내 성공한 기업가와 새내기 창업자를 연결해준다. 패리 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옆 건물에 입주했다고 해서 연구단지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고 화학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주는 게 중요하다"며 "기술, 재정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교류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전역의 스타트업들이 몰려들면서 지역 고용창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현지 대학 출신 학생들은 대기업에 눈 돌리기 보다는 각종 스타트업이나 벤처의 연구인력으로 취직하고 있다. 톰 호긴스(Tom Hogggins) 골드아이(Gold-i)대표는 "큰 회사에서의 고용이 줄어들면서 우리 회사 같은 작지만 강한 회사가 중요하게 됐다"며 "지금까지 전체 직원 중 4분의 1을 지역대학 학생으로 선발했는데 점점 더 지원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길포드=정혜진기자 madein@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