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지난 6일 구속돼 수사를 받은 데 이어 검찰이 17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세우자 정부부처의 한 고위관료는 “안쓰럽지만 (정무직을 맡은) 교수로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분야의 행정 경험도 없고 부처 장악도 안 되는 상태에서 정책결정권자의 지시를 수행하는 데 익숙한 결과라는 얘기다. 그는 이어 “솔직히 공직생활 20여년간 장관이나 기관장으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교수를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면서 “역대 정부의 실패를 목도했음에도 ‘우리 측 대선캠프에 있었던 교수만은 괜찮다’는, 묘한 자기최면에 걸려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출범 초부터 교수와 법조인을 ‘유독’ 선호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라 불리던 이들은 청와대의 경제정책 라인은 물론 금융계에 포진했고 캠프 출신의 학자들은 교육부터 과학·문화 분야 등에 두루 포진했다. 서울경제신문 조사 결과 4년 차인 박근혜 정부는 학자 출신 31명을 청와대와 중앙정부부처의 장·차관급 자리에 앉혔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26명보다 많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기용된 교수·학자 출신들이 여느 정권에 비해 도마에 자주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대 교수였던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퍼주기 논란에 휘말린 데 이어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부총재의 자리마저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한양대 교수 출신인 김종 전 차관은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각종 이권을 챙기도록 지원하고 현안보고와 인사 청탁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안종범 전 수석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인데 주요 재벌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과정에서의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 기소를 앞두고 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학자들을 영입하는 경향이 짙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보다는 ‘복지부동’ ‘인기 영합’ 등 관료와 정치인 출신의 부정적 측면이 크게 부각되면서 ‘전문성’을 갖춘 학자 출신들이 선택된 측면이 있다. 일각에서는 실무능력이 결여된, 책상 위에서만 체득한 ‘전문성’이 되레 과도한 충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권력을 지향하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고위관료를 차치하더라도 공무원이 학자 출신 상관에게 부여하는 학점은 ‘F’에 가깝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중앙부처의 한 과장은 “하나의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야 될 수 있는 교수는 본인이 관심 있는 것 말고는 신경을 잘 못 쓰는 것 같다”며 “공무원은 한정된 자원으로 형평성·보편성·비용효과성 등을 고려해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야 하는데 학자 출신은 자기가 아는 것 딱 하나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자 출신 장관 밑에서 과장으로 일했던 또 다른 부처의 한 국장은 “현안과 관련된 설명을 여러 차례 했는데도 장관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며 “너무 세부적인 내용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했다가 ‘나를 무시하는 거냐’는 핀잔을 들었다. 차라지 정치인 출신은 정무적 감각이 있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업무추진력도 뛰어나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를 예로 들면 사회복지학과 교수 출신 장관은 연금에 대해 몰랐고 연금학자 출신 장관은 보건 분야에 대해 몰랐다.
이 같은 인사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현재 당면한 상황에 따라 기관을 내부 조직 관리가 더 요구되는 곳, 패러다임을 바꾸고 청사진을 만들어야 하는 곳, 정무적 감각으로 풀어야 할 현안이 있는 곳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수장에 각각 관료·학자·정치인을 선임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기관장은 임명권자가 아닌 국민을 ‘보스’로 생각하고 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학자 출신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돌아갈 학교가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 소신껏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치권 등이 인재를 육성하려 하지 않고 사람이 필요하면 학교에 전화부터 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학자 출신의 공직 진출은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최소한 한국연구재단·구글스칼라 사이트를 통해 그 사람이 논문을 몇 편이나 썼는지 살펴보는 등의 객관적인 인사검증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캠프에 몸담았던 교수들은 싱크탱크에 머물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세종=임지훈·박홍용기자 jhl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