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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逃債臺(도채대)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주나라 난왕이 백성들의 빚 독촉 피하기 위해 도망친 누대





사람은 실패를 피하고 성공을 바란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해 가장 좋은 선택을 내리려고 한다. 현실은 다양한 변수에 의해 움직이므로 개인이 생각하는 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이때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는 나와 비슷한 인물들이 숱하게 나온다.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지만 아직 그 일이 어떻게 귀결이 될지 알 수가 없다. 역사에서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보면 미래의 나를 미리 만날 수 있다. 주나라의 무왕(武王)은 학정을 일삼는 은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이 주나라는 37대 난왕(난王)에 이르러 망하게 되었다. 난왕이 망하기 전에 주나라의 사정은 망국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당시 주나라 왕은 명색이 천자이지만 실제로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고 낙양 일원을 관할하는 초라한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마저도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 동주(東周)와 서주(西周)가 서로 잘났다고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제왕세기(帝王世紀)’에 따르면 난왕의 신세는 참으로 말이 아니었다. 명색이 왕이지만 실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그는 백성들에게 부채를 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백성들은 처음에 왕이 갚으리라 생각하고 돈을 빌려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갚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난왕을 찾아가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했다. 난왕은 빚을 갚으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왕궁에 높다란 누대를 지었다. 그 누대에 올라 백성들이 빚을 갚으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편안하게 지냈다고 한다. 난왕은 누대를 짓고 멋있는 이름을 붙였겠지만 지금 그 이름은 전해지지 않고 다른 이름이 전해진다. 후대에 이 누대의 이름을 빚 갚으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 도망간 누대라는 맥락에서 도채대(逃債臺)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렇게 백성들의 빗발치는 원성에 귀를 닫았던 난왕도 결국 나날이 강성해지는 진(秦)나라의 위협을 피할 수 없었다. 난왕은 진나라 장군 영규의 공격을 받자 그에게 항복한 뒤 영토를 헌상하고 진나라의 보호 체제에 들어갔다. 난왕은 생명을 건졌지만 주나라는 망한 것이다. 원성을 듣지 않을 수 있었지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다. 난왕은 주나라의 왕 중에서 59년간(BC316~256)이나 왕위에 있었으며 나라가 망한 이듬해에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난왕은 꽤 배짱이 두둑했지만 망국의 고통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나라가 난왕 때문에 망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채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난왕이 왜 난왕인지 이해할 수 있다. ‘난(난)’ 자는 얼굴을 붉히다, 부끄럽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난왕은 ‘얼굴 붉힐 왕’ 또는 ‘부끄러운 왕’이라는 뜻이다. 역사책에서 난왕이 등장할 때마다 독자는 ‘얼굴 붉힐 왕’ 또는 ‘부끄러운 왕’이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게 된다. 도채대의 이야기를 읽으면 “아하, 이름에 어울리는 행각을 했구나”라며 작명을 한 사람의 탁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내가 죽은 뒤에 역사에 어떻게 평가될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평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이 죽게 되면 생전에 불리던 이름이 아니라 엄정한 역사적 평가를 받아 새로운 이름으로 명명되기 때문이다. 영웅은 아니더라도 보통보다 못한 이름이나 타인에게 고통을 준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 죽어서도 영면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화제의 인물이 된다. ‘죽서기년’에 보면 난왕은 은왕(隱王)으로도 불린다. 그 이름은 ‘숨은 왕’ ‘음흉한 왕’ ‘사사로운 왕’이라는 뜻을 나타내므로 난왕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왜 난왕으로 불리게 되는지 그 비밀을 알려주고 있다. 난왕은 혼자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주나라의 멸망을 막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망해가는 상황에서 도채대의 공사를 벌여 은왕이나 난왕의 이름을 더욱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일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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