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매년 12월 초에 단행했던 사장단과 임원 정기인사를 연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따라 임원인사 이후 계열사별로 이뤄졌던 조직개편도 덩달아 미뤄지게 됐다.
삼성이 정기인사를 미루는 것은 지난 2008년 삼성 특검 이후 처음이다.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인사와 조직개편에 차질을 빚으면서 내년도 경영전략 수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 스케줄’이 완전히 엉클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최순실 게이트에 인사·조직개편 연기=27일 삼성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전개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통상 12월 초에 단행했던 사장단과 임원인사를 연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인사와 계열사별 조직개편을 모두 마무리 짓고 신년부터 경영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돌발변수들이 잇따라 터지면서 인사 연기를 결정하게 됐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은 다음 달 6일 국정조사 증인으로 나서야 한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법무팀 등과 함께 청문회 준비에 여념이 없어 사장단과 임원인사를 챙길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미래전략실도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에 발목이 잡혀 행동반경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그룹 수뇌부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거나 사무실 압수수색을 받는 처지에 놓여 있다.
삼성 관계자는 “12월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이맘때쯤이면 내부적으로 하마평들이 돌기 시작하는데 요즘은 너무나 조용하다”며 “특검과 국정조사 일정 등을 감안하면 하염없이 인사가 늦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앞으로 국정조사는 2개월가량 전개된다. 특검은 90일 동안 활동이 보장되고 대통령 승인을 받으면 30일 연장이 가능하다. 내년 3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조사와 특검 과정에서 이 부회장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들이 연쇄적으로 청문회에 나서거나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인사와 계열사별 조직개편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실제 삼성은 2008년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을 받을 당시 1월 정기인사를 특검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인 5월 중순으로 넉 달가량 미룬 적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가지는 폭발력과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감안할 경우 이 같은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영전략 수립 차질 우려=사장단 인사와 사업개편이 늦춰지면 연쇄적으로 내년도 경영전략 수립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보통 삼성을 포함해 대기업들이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정기인사를 마무리하고 신년을 맞이하는 것은 새해 경영활동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삼성의 경우 이 부회장이 지난달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된 만큼 기업경영에 있어 ‘자기 색깔’을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룹이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에서 허둥대고 있어 미래전략실 기능을 지금보다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08년 특검 이후 삼성은 전략기획실 폐지 등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삼성의 인사원칙은 ‘신상필벌’이다. 올해의 경우 최순실 게이트 연루 의혹으로 기업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고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기술의 삼성’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은 만큼 인사 폭도 지난해보다 클 것으로 예상된다. 휴대폰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IT·모바일(IM) 부문과 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삼성전기 등 전자 계열사에서 사장급 임원의 변동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반면 신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는 전장사업과 바이오 분야에서는 경험과 능력을 겸비한 새로운 인재가 발탁되고 관련 조직도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9조3,000억원을 들여 하만을 인수한 것에서 드러난 것처럼 전장사업팀은 별도 사업부로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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