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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위기. 신사업에 길 있다] 조급증 버리고 긴 호흡으로...수년내 '블록버스터 신약' 터뜨린다

<4·끝> 무르익는 'K바이오'의 꿈

삼성·SK·LG 등 대기업

"바이오가 차세대 먹거리"

지속투자로 성과 가시화

10년넘게 신약개발 매진

바이오벤처 활약도 주목

2915A09 주요 기업들 바이오 부문 전략




바이오·제약 산업은 주요 산업군 중 가장 호흡이 긴 곳으로 손꼽힌다. 신약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평균 10년 넘는 기간이 걸리고 최소 2,000억원에서 최대 수조원의 개발비가 들어간다. 개발된 신약이 꼭 상업화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 리스크도 크다. 자본과 노동력을 특정 산업군에 집중해 단기간에 급성장한 국내 기업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매력도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바이오·제약 산업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렸던 조선·전자·반도체·자동차·철강 등 주력산업들이 성장성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1인당 국민소득(GDP) 3만달러 시대를 뒷받침할 차세대 성장 모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수한 국내 임상인력, 벤처 활성화 등을 감안하면 바이오 산업 도약의 여건이 무르익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제약 산업의 특성상 기존의 ‘빨리빨리’ 한국 기업문화나 경영진의 조급증을 버려야 오히려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그룹을 비롯해 SK·LG·CJ 등도 글로벌 제약 업체들의 성장기를 벤치마킹해 긴 호흡으로 접근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10여년을 투자해온 바이오벤처들의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도 생태계 활성화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 중 하나다.

◇대기업들 “돌고 돌아 바이오”=올해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한해였다. 삼성과 LG·SK 등 대기업이 바이오 부문에 집중 투자하며 국내 산업의 물줄기가 다시 한번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LG그룹은 지난 9월 신약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2002년 분사했던 LG생명과학을 LG화학과 다시 합치기로 했다. LG화학의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신약 개발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LG화학은 합병안 발표 직후에도 “투자의 방향성과 관련한 중요한 키워드는 신약 개발”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LG생명과학 출신의 한 바이오벤처 업계 대표는 “LG가 꾸준히 바이오 산업에 투자했다면 지금의 한미약품을 뛰어넘는 위상을 확보했을 것”이라며 “바이오 부문이 자본 및 인력집약적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LG 측의 결정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바이오 전략도 주목할 만하다.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전문업체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달 기업공개(IPO)로 2조원 넘는 돈을 끌어모았고 이를 통해 3공장 건설을 마무리한 뒤 4공장·5공장 건설에 나설 예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3공장이 완공되는 오는 2018년 바이오의약품 생산규모만으로 세계 1위(36만ℓ) 자리에 오르지만 반도체 성공신화를 썼던 ‘초격차전략’으로 향후 2위와의 격차를 더욱 벌릴 계획이다. 특히 바이오시밀러 생산으로 벌어들인 돈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나설 경우 한국 바이오 산업의 질적 도약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외에 SK와 CJ 등 대기업이 차세대 먹거리 사업인 바이오 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다. 이 중 SK케미칼의 경우 2009년 CSL사에 기술이전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가 이달 유럽의약품청(EMA) 산하 인체약품위원회로부터 시판 허가를 권고받는 등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정세영 전 대한약학회 회장은 “각 업체가 일관성 있게 바이오 사업을 추진한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최근 바이오 산업에 다시 출사표를 던진 대기업들 또한 단기 성과보다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벤처도 같이 뛴다=신약개발 생태계의 가장 밑단에 있으면서도 핵심 역할을 하는 바이오벤처의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 이들은 신약 개발에만 10년 넘게 투자해온 곳이 대부분이며 수년 내로 성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LG생명과학(옛 LG화학) 연구소장 출신인 조중명 대표가 이끄는 크리스탈지노믹스다. 국내 바이오벤처가 만든 첫 신약인 ‘아셀렉스’를 개발하는 등 업계 맏형으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분자표적항암제와 급속백혈병치료제 관련 임상 및 기술 수출로 바이오벤처로서의 확실한 성과를 보여준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외에 신약 재창출을 활용한 신약 개발 업체 지피씨알, 신약개발 플랫폼 ‘뮤코맥스’를 보유한 바이오리더스, LG생명과학 연구소장 출신인 김용주 대표가 이끄는 레고켐바이오 등이 기대주로 손꼽힌다.

이 같은 바이오벤처들의 활약은 신규 벤처의 합류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케미칼 출신들을 주축으로 올 초 창업한 ABL바이오의 경우 이중항체 기술과 항체약물접합 기술로 벤처캐피털로부터 90억원가량의 투자를 받는 등 신약 개발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업계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대형 제약사들이 더 분발해야 산업 발전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내 제약 업계의 한 연구원은 “오너 중심의 국내 제약사들은 기술도입이나 외부와의 연구성과 공유보다 자체적으로 성과를 내려는 문화가 여전하다”며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수출 이후 움직임이 다소 빨라지기는 했지만 조금 더 절박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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