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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판도라’ 좋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배우 김주현, 왜 지금까지 안 풀렸을까?

7일 개봉한 박정우 감독의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소재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 ‘판도라’에서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배우는 단연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의 연인 ‘연주’를 연기한 신인배우 김주현이었다.

김주현은 시작부터 전날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하고는 숙취에 시달리는 남자친구 김남길의 무릎을 걷어차는 걸걸한 이미지로 등장하더니, 나중에는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라는 초유의 재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김남길의 어머니인 석여사(김영애 분)와 형수 정혜(문정희 분)의 대피를 이끄는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재난영화에서 그것도 신인배우가 이렇게 주관이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기란 흔치 않은 일이다.

영화 ‘판도라’ 김주현 / 사진 = 지수진 기자




‘판도라’가 개봉한 7일,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판도라’의 신예 김주현을 만났다. 사실 신인배우라고 하지만 김주현은 올해 서른살로 이제야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신인배우치고는 나이가 그리 적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주현에게는 그 대신 다른 신인배우들은 가지지 못한 오랜 고민의 시간과 깊은 생각이 그녀의 모습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김주현은 다른 배우들처럼 어린시절부터 배우라는 직업을 갈망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보지 않은 채 동국대학교 공연예술학부에 진학하게 됐고, 그 곳에서 연기를 배우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이해하고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배우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감정을 표출하고, 어떤 열정을 보여주는지 잘 모르는 채로 진학을 하게 됐어요. 시작 자체가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큰 갈망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20대 초반에는 힘들다는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대학에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되고 배우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졸업 이후에는 한동안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어요.”

김주현은 ‘판도라’ 이전에는 대중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다. ‘한주현’이라는 예명으로 SBS 드라마 ‘모던파머’에 탈북녀 역할로 출연한 것이 그나마 가장 눈에 띄는 배역이었고, 그 외에는 지난 8월 대국민 오디션을 통해 18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에 낙점됐다가 결국 하차하게 된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주목을 받았었다.

영화 ‘판도라’ 김주현 / 사진 = 지수진 기자


“지금까지 오디션을 보러가면 최종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 때 마다 ‘왜 지금까지 안 풀렸냐?’는 말도 여러 번 들었고, ‘인지도 없는 친구라 곤란하다’는 말도 들었어요. 또 여성스럽다, 여려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말이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었죠. 그래서 쉬는 동안 아예 오디션을 안 보러 다닌 시간들도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연기에 대해 아직 답을 찾지 못하기도 했고, 당시 소속사와도 그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대화를 해야할지 몰랐어요.”

그리고 지금의 ‘김주현’이라는 배우를, ‘판도라’의 ‘주연’을 만들어준 것은 바로 김주현이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던 20대 중반의 경험들이었다. 보통의 신인배우들이 현장에서 감독의 지시대로 연기하기에 급급하다면, 김주현은 항상 박정우 감독에게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끊임없이 질문하며 ‘연주’의 캐릭터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에 더욱 귀를 기울여나갔다.

“언젠가 꼭 한 번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멋있는 여성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저와 이야기를 하시더니 제 안에 그런 모습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연주’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실제 ‘연주’처럼 표현이 거칠지는 않지만 ‘연주’가 가진 강한 책임감 같은 점은 제 성격하고도 비슷해요. 다행히 박정우 감독님이 그런 제 모습을 좋게 봐주셨어요.”

“영화를 보고 ‘재혁’과 ‘연주’가 연인 감정처럼 안 보인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런데 ‘연주’는 ‘재혁’과 연인이기도 하지만, 남자와 여자로서의 연인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가족 같은 연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연주’는 ‘재혁’도 중요하지만, ‘재혁’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판도라’는 가족애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고, 감독님이 영화에 ‘재혁’과 ‘연주’의 달달한 러브신을 안 넣으신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했고, 저도 사랑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다고 생각했죠.”



영화 ‘판도라’ 김주현 / 사진 = 지수진 기자


김주현과 이야기를 나누며 신인배우라고 하지만,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경험한 베테랑 배우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문득 들곤 했다. 말은 조근조근 차분하지만 자신이 해야할 말은 똑 부러지게 했고, ‘연주’라는 캐릭터는 물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는 생각 역시 오랜 고민의 산물인만큼 확고했다.

“‘엽기적인 그녀’ 오디션을 보고 떨어진 이후에 물론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 힘든 이유가 단지 캐스팅 불발 때문은 아니에요. 공개 오디션이어서 이슈가 된 것이지 원래 그런 일은 배우를 하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그보다는 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다 저에게는 성장을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20대에 고민했던 시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살면서 배우로서 분명 한 번 쯤 겪어야 했던 시간들이더라고요. 연기를 잘 하다가도 슬럼프가 와서 힘들어하는 배우들도 있듯이, 배우에게는 그렇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혼자서 고민하는 동안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다 해 본 것 같아요. 여행도 가 보고 제 자신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좋은 글도 읽고 자기계발서도 읽고 영화도 많이 찾아봤어요. 그래서 전에는 제 자신이 다소 억압됐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영화 ‘판도라’ 김주현 / 사진 = 지수진 기자


아역배우나 아이돌로 시작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이미 스크린에서 주연급 배우로 출연하는 배우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올해로 서른인 배우 김주현의 시작은 상당히 많이 늦은 편이다. 하지만 늦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처음 쉽게 지펴진 불꽃은 그만큼 쉽게 사그라들 수 있지만, 오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김주현의 불은 늦게 켜졌지만 그만큼 더욱 강하게 타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에는 ‘판도라’의 ‘연주’와는 반대되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어떤 장르의 어떤 영화라기보다는 속마음이 강한 ‘연주’와는 다른 감성을 해보고 싶어요. 나탈리 포트만의 ‘블랙 스완’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배우를 하면서 그런 작품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영광스러운 일일 것 같아요.”

“배우로서 고민을 하던 시기, 좋은 영화를 보고 배우의 좋은 연기를 보면서 많은 에너지와 자극을 받았어요. 예전에는 무작정 연기를 잘 해서 작품에 도움이 되는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좋은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한 편의 영화를, 한 사람의 연기를 보고 누군가는 인생이 바뀔 수도 있잖아요? 저도 ‘굿 윌 헌팅’이나 ‘블랙’ 같은 영화를 보며 그랬어요. 제가 대단한 배우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그랬듯이 제 연기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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