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의 연장인가,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의 시작인가.’
양적완화 기간을 연장하면서 자산매입 규모는 줄이는 유럽중앙은행(ECB)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간 연장에 방점을 두면 양적완화 지속으로, 규모 축소에 주목하면 테이퍼링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할 ECB가 오히려 불확실성만 증폭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은 일제히 지난 8일(현지시간) ECB 정례 통화정책회의 직후 향후 정책방향을 예측하느라 분주한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ECB는 내년 3월로 종료되는 양적완화를 12월까지 9개월 연장하되 현재 월 800억유로인 자산매입 규모를 내년 4월부터 600억유로로 축소하는 내용의 통화정책을 발표했다.
ECB 회의에 따른 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회의 직후 유로화 가치는 1%가량 급등했으나 “테이퍼링은 의제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발언을 계기로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주요국 주식시장도 일제히 상승 마감했다. 외환·주식시장은 ECB의 결정을 두고 양적완화 연장에 방점을 찍은 셈이다. 하지만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는 일제히 상승하면서 테이퍼링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ECB가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채권매입 수요가 줄어들면서 가격은 하락(금리 상승) 압력을 받는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갈린다. 올리버 드 라로지니어 나티시스애셋매니지먼트 채권담당자는 “양적완화 연장 기간이 예상보다 길다”며 “향후 채권금리는 하락세(가격 상승)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닐 윌리엄스 에르메스자산운용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한 연장에 따른 추가 양적완화 규모는 그리스나 포르투갈의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육박한다”면서 “이는 추가 양적완화지 축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피터 채트월 미즈호은행 분석가는 “전체적인 양적완화 규모는 시장의 예상보다 줄어들었다”고 진단했으며 마르크 오스트월드 ADM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결정은 비둘기적 테이퍼링”이라고 결론을 냈다. 리처드 바월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나이키 광고문구를 언급하며 “이번 결정은 테이버링의 나이키 버전”이라면서 “말하지 말고 그냥 하라(Don‘t say it. Just do it)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ECB의 모호한 정책이 시장의 불확실성만 높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카스텐 브르제스키 ING 이코노미스트는 “절충안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2013년의 연준처럼 ECB가 테이퍼링 발작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ECB가 자산매입 대상에 만기 2년 미만 단기채와 시장금리 -0.4% 미만의 채권을 포함한 데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프랑크 딕스미어 알리안츠 채권투자책임자는 “드라기 총재가 단기채 시장에 대한 개입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핵심”이라며 “이는 ECB가 은행 살리기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이날 ECB 결정 이후 독일의 1년 만기 국채금리는 0.03%포인트 하락한 반면 10년 만기 국채는 0.05%포인트 올랐다. 장단기금리 격차 확대는 통상 돈을 단기로 예치하고 장기로 운용하는 은행들의 수익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