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는 근로자의 시간당 최저임금이 6,470원으로 올해보다 7.3% 오른다. 8시간 기준 일급은 5만1,760원이고, 주 40시간제 월급으로 치면 135만2,230원이다. 따져보자, 이게 ‘내 시간’과 맞바꿔 얻은 노동의 대가로 적합한가? 평생 사치스럽게 쓰고도 남을 상속을 받은 패리스 힐튼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지금 버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과연 지금의 노동을 계속 하겠는가?
정치학과 철학박사인 저자는 기술 발달로 상당한 일상적 일들이 자동화되고 있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파고들어 ‘노동 없는 미래’를 예측해 본다.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삶이란 개념의 중심에 있지만 보수를 받는 일자리는 점점 드물고 불안정해져 가고 있으며 설상가상 그 보수가 평생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수에도 못 미치고 있다.…이제 풀타임잡(종일근무제)의 시대는 끝나고, 어떤 마법 같은 순간에 일자리들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헛된 기대 또한 접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경제정책과 정치인의 공약이 일제히 ‘일자리 창출’에 쏠려있는 현실을 향해 저자의 주장은 찬물을 끼얹는다. 그는 우선 ‘인간 조건’을 쓴 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의 핵심 개념인 ‘일’과 ‘노동’의 차이를 분명히 밝힌다. ‘노동’은 생존을 위해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노예 상태와 흡사한 반면 ‘일’은 인간의 욕망과 계획 아래 의식적으로 전개되는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구분이다. 이런 엄밀한 구분은 고대사회에서는 특히 명확했지만 노예 제도가 사회적 합의 하에 사라지고 노동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오늘날에는 “일과 노동은 상당 부분 그 경계가 희미”해졌으며 “그래서 우리는 적어도 어느 정도 노예 제도의 성격을 갖고 있는 일을 나름대로 자긍심을 갖고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전제다.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싫건 좋건 일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 ‘임금 노예’다. 책의 시작을 ‘일의 과거’와 ‘일의 현재’로 여는 저자는 개인의 시간을 할애한 노동을 돈과 맞바꾸게 한 역사적 배경을 되짚는다. 이를테면 칼 마르크스의 ‘잉여 가치’ 이론은 “노예들이나 하는 활동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노동을) 단순한 개인적 생존 차원을 넘어선 유익하고 생산적인 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했다. 저자는 즉 “유급 일자리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쳐 굳어진 정치적 결정들의 산물”이라고 강조하며 생존을 위해 돈을 받고 일할 수 밖에 없는 ‘유급 노동’의 논리에서 벗어나라고 한다.
저자는 묻는다. 기술 발전, 특히 인공지능의 발달로 로봇이 내 일자리를 가져가는 게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의 주장은 노동없는 미래가 잠재적으로 바람직하다. “어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하루를 배불리 보내게 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자기 대신 물고기 잡는 일을 해 줄 로봇을 주면 그 사람은 보다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들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른바 ‘탈노동’이라는 접근방식을 택한 저자는 사회의 생산적인 일은 기계에 떠넘기고 인간은 자유롭게 다른 활동을 추구하는 삶을 누리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정치 개혁을 통해 보편적인 기본 소득 시스템이 갖춰져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제공돼야 한다. 어차피 지금도 ‘받는 임금만으로는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다분히 이상적인 ‘노동 없는 미래’는 ‘생존을 위해 급여를 받고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운 미래’다. 1만3,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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