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노이라트의 배’처럼 망망대해를 항해하면서 동시에 배를 고쳐야 하는 위기에 맞닥뜨려 있습니다. 한국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대개혁운동이 필요합니다.”
윤증현(70·사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교육 전문 기업 휴넷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연 명사특강에서 현 우리 사회를 침몰 위기의 배에 비유하며 이같이 말했다. 노이라트의 배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논리실증주의 사회학자 오토 노이라트가 세상 사람들이 항해 중인 배를 뜯어고쳐야 하는 뱃사람의 신세와 같다며 던진 명제다. 총체적 신뢰의 위기를 맞은 우리 사회에 그대로 투영된다는 의미다.
윤 전 장관은 “정치 실종, 정책 실기에 세계 경제의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까지 현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우외환”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7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6%로 예상하듯 2%대 저성장 기조와 가장 심각한 수준의 일자리 문제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장절벽을 뛰어넘는 방책은 산업 구조 개편이다. 윤 전 장관은 “우선 성장의 양보다 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지금 산업계에서 일자리와 기술인력이 동시에 부족한 모순을 풀어야 하는데 그 길조차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꼽는 해결방안 중 하나는 고급인력이 몰리는 의료 분야를 산업화해 일자리를 만들고 관련 기기의 수출 증대, 국제경쟁력 강화를 꾀하는 것이다. 그는 “의료 산업화는 의료 민영화 논란에 걸려 출구가 막혀 있다”며 “현금을 쌓아두는 대기업만 탓할 것이 아니라 투자기회를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처럼 교육·관광 분야도 자본과 기술이 만나는 시장경제의 틀에 제대로 들어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의료·관광·교육 분야를 아울러 한반도 전체를 경제특구화하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푸는 해결책으로 교육을 꼽았다. 사회 근저에 깔린 문제들이 사실상 모두 교육에서 나오고 있다는 지론이다. 윤 전 장관은 지난 2016년 초 전직 장관, 대학 총장들이 발족한 시민단체 바른사회운동연합에 교육개혁추진위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했다. 그는 “현재의 맹목적인 평준화 교육정책이 공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창의적 인재를 키우려면 대학 입학시험 출제·평가를 대학에 완전히 맡겨야 한다는 것.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 대학은 스스로 문 닫게 하고 대신 국공립대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저한 시장주의자답게 “자유시장을 이기는 어떤 정책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등은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며 “지금처럼 평등의 의미를 왜곡하고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과연 가치중립국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한계에 달한 것은 목표와 방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며 “국가 대개혁 계획표를 만들어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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