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가 무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죄’를 겨냥한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다음달 초까지 박 대통령을 조사대에 앉힌다는 특검의 기존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게다가 특검은 이 부회장의 구속 수사가 불발되면서 ‘무리한 수사로 기업 흔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에도 직면했다. 이에 반해 삼성은 ‘오너 공백’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19일 새벽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라는 사적 이익을 위해 회삿돈을 빼내 거액의 뇌물을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씨 측에게 제공한 만큼 혐의가 무겁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회장이 박 대통령 등의 강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비선실세 최씨를 지원했고 글로벌 브랜드 7위 삼성그룹의 총수로 도주·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삼성 측 변호인단의 변론을 받아들였다. 강요·강압의 피해자라는 삼성 측 주장이 인정된 셈이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할 경우 △뇌물공여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 △국회 청문회 위증 등 그에 대한 혐의는 앞으로 있을 법정 다툼에서 진위가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특검이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의혹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면서 수사계획에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는 점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수사와 더불어 청와대 압수수색, 박 대통령 대면 조사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한다는 방침이었다.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한 첫 관문을 통과한 만큼 이후 과정에 전력을 쏟는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 구속 수사가 물거품이 되면서 전체적인 수사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법원이 최씨 일가에 대한 거액 지원을 대가성 뇌물이 아닌 강압에 이뤄진 행위로 간주하면서 박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할 연결고리 하나를 잃어서다. 게다가 특검에는 청와대와의 법리 싸움도 남아 있다. 법리 검토에 전력투구할 수 없는 만큼 특검이 다음달 초로 밝힌 박 대통령의 대면 조사가 늦춰질 수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 박 대통령 대면 조사는 특검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을 파헤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다. 하지만 이행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이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때처럼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서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서다. 청와대가 국가기밀 등을 보관하는 장소라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거부하면 특검은 임의제출 방식으로 제한된 자료만 받을 수밖에 없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박 대통령 뇌물죄 입증을 위한 수사가 앞으로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검은 결정적 증거를 새로 확보해야 하는 한편 대면 조사 등을 위한 법리 검토까지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특검이 롯데·SK·CJ 등 다른 대기업 수사에 가속을 붙이면서 박 대통령을 조사대에 앉히기 위한 법적 근거도 찾아야 하는 등 이중고에 빠졌다는 뜻이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가 “다른 대기업 수사는 이 부회장 구속과 상관없이 진행한다”고 밝힌 점도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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