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상대를 공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를 통틀어 검증된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바로 상대가 크고 강하면 물러선 뒤, 유리한 위치와 시간을 선정해 집단의 힘으로 격파하는 방법이다. 우리 기업은 인류 DNA에 내재된 협력을 통한 생존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형 바이어 중심의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주효하다.
중국의 소비가 무섭게 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백화점과 쇼핑몰에서 고가품과 외국 상품이라면 묻지도 않고 날개 돋친 듯 팔리고는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유통판매 방식에 짙은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브랜드의 가격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고객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중국 소비자들은 이제 무조건 비싼 제품을 찾지 않는다. 가성비를 고려한 똑똑한 소비를 하고 있다. 합리적인 가격과 소비자 편익 중심의 유통방식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현대 중국의 소비 방식은 복합 쇼핑몰, O2O(Online to Offline) 체험판매장, T2O(TV to Offline) 등 소비자중심의 유통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항저우는 중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유통 중심지다. 이곳 소비자들은 일찍부터 모바일과 신용카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구매했다. 항저우에 본사가 있는 전자상거래 공룡 기업 알리바바도 O2O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자제품 거대 유통업체인 쑤닝(蔬寧)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었고 중국 최대 소매 유통체인 중 하나인 인타임리테일을 인수합병(M&A)한 것이 그 좋은 예다.
중국 유통시장의 변화를 논할 때 ‘물류의 혁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직수입 확대와 스마트 물류방식의 확산으로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중국 곳곳에 수입총판과 물류거점을 두는 방식이 이제 무의미해지고 있다. 현재는 중국 동부 연안 물류기지에 수입 물품을 하역하면, 최첨단 운송 시스템을 이용해 항저우까지 보내는데 하루, 심지어 최서단에 위치한 우루무치까지도 3일이면 도착하는 초고속 물류 시대가 됐다. 또한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으로 대륙횡단 화물철도가 개통됐는데 이로 인해 한국 기업의 내륙 진출이 보다 쉬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곳 항저우에서 확립돼 중국 내 13개 전자상거래 종합시범구역에서 운영되는 유통 모델이 있다. 바로 ‘국경 간(역직구) 전자상거래’ 방식이다. 내국 보세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판매 방식을 통해 오프라인 체험장에서 먼저 수입 물품을 체험한 후, 모바일로 결제해 택배로 소비자가 제품을 받아보는 형태다. 항저우는 제1호 국경 간 전자상거래 종합 시범구역으로 선정돼 관련된 규정과 방식을 정립했다.
KOTRA 항저우 무역관은 역직구 전자상거래 개념을 활용해 ‘한국산보세정품 M2M 전자상거래’ 사업 방식을 도입했다. KOTRA에서 운영 중인 공동물류창고에 입고한 복수(M)의 한국 기업 제품을, 복수(M)의 수입물품 취급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국내기업에 ‘통관-유통채널-물류’에 이르는 전(全) 주기적 지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업 론칭 이후 한국 공급자와 전자상거래 플랫폼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이 모델을 활용해 KOTRA는 통관이 어려운 제품의 사전 통관, 유통 비용 인하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등을 도모하고 있다. 또한 한국 기업은 중국 투자법인 없이도 판매 현황을 실시간 조회할 수 있고 매출액의 즉각적인 회수도 가능하다. 동시에 정식 제품수입 전에 서류로 통관 심사를 진행하는 격이니 정치 이슈로 야기된 수입 통관 리스크를 회피할 유용한 방안이기도 하다.
중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향후 5년간 매년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역직구 전자상거래는 지난해 75%나 성장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은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 기업은 중국의 이러한 변화를 포착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우수한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을 자랑하는 많은 수의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선제적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면 중국의 대형 유통망과 붙어도 견줘볼 만하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표현은 한국인의 이러한 협동의 DNA를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한류 콘텐츠를 통한 융합 마케팅, 창의적인 서비스를 가미한다면 수요자가 먼저 우리 제품을 찾게 되는 공급 측면의 슈퍼갑(甲)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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