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이어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유력해지면서 미국 의회에서 대북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을 중심으로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비롯해 금융봉쇄를 통한 북한의 자금줄 차단에 관한 논의가 부상하고 있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테드 포(공화·텍사스) 하원의원은 16일(현지시간) “김정남 암살의 배후가 북한으로 드러나면 그동안 북한 정권이 자행한 테러 목록에 새 행위가 추가되는 셈”이라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 재지정할 요건이 된다”고 말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이날 보도했다. 포 의원은 지난달 북한이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테러행위를 조사해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HR479)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상원에서도 북한의 달러 자금줄 봉쇄를 위해 전방위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테드 크루즈(텍사스),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의원을 비롯한 6명의 공화당 의원들은 지난 14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북한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위한 조사를 비롯한 10개 조치 이행을 공식 요구했다는 사실이 이날 공개됐다.
이들은 △북한 은행을 ‘특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차단할 것 △북한 은행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없도록 유럽연합(EU)과 벨기에 당국에 요청할 것 △대북 특별조치를 입법화해 미국 관할권 내 모든 은행에 대해 북한의 자산과 이해관계, 모든 금융거래 기록 및 보고서 등을 등록하도록 할 것 등을 요구하며 북한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중국의 대북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법무장관과 공조해 단둥훙샹그룹 사건과 관련된 ‘중국은행(BANK OF CHINA)’ 및 12개 다른 중국계 은행에 대한 조사를 이른 시일 안에 개시 △북한 은행에 직간접 대리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은행에 대해 강력한 조처 △북한 석탄수입과 관련해 미국 내 자산보유 및 수익을 금지하는 미국 대북제재법 및 행정명령 13722호를 위반하는 중국 금융기관의 자산 동결 등의 내용도 요구사항에 담았다.
이들은 서한에서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는 미 의회가 대북제재법을 제정했는데도 이를 활용해 북한에 경제적 압박을 가하는 것을 망설여왔다”며 “그 결과 북한은 금융제재를 회피하고 불법거래를 위한 위장회사를 설립함으로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개발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의회의 목소리는 대북 정책의 밑그림을 새로 그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북한 문제를 “정말 정말 중요한 사안(really really important subjects)”이라고 언급하며 “이 모든 문제를 잘 다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87년 11월 대한항공(KAL) 여객기 폭파 사건으로 이듬해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랐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 임기 종료를 몇 달 앞두고 북미 간 핵 프로그램 검증에 합의하면서 2008년 테러지원국에서 빠졌다. 이후 미 의회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북한의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초당적으로 요구해왔다. /연유진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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