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7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 청문회장.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밤 9시께 동영상 링크가 포함된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카톡을 보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이용자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회의에서 최순실의 의혹을 검증하는 동영상”이라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 자리에 참석했다. 최씨를 뉴스 보고 알았고 기존에 모른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증거”라고 밝혔다. 해당 영상은 지난 2007년 7월19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 검증 청문회 자료로 방청석 맨 앞자리에는 당시 캠프 선거대책부위원장이었던 김 전 실장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었다. 청문회 내내 “최순실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부인하던 김 전 실장은 결국 청문회에서 이 영상이 밤 10시께 공개된 뒤에야 “이제 보니까 내가 (최순실 이름을)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말을 바꿨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향해 입장을 전달하는 일방통행식 소통을 넘어 국민이 정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고 답을 돌려받으며 그 결과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다층적인 소통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선주자들도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는 정치에서 참여하는 정치로=1970~1980년대 매일 하루 정치가 시작되는 곳은 유력 정치인들의 자택이었다. 정치부 출입기자들은 정치 거물들의 집에 가서 아침을 함께 먹으며 정계 구상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상도동·동교동 양대 계파가 있던 1980년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인 손명순 여사가 매일 아침 손님들을 위해 100인분 안팎의 시래깃국을 만들어 대접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역시 기자들에게 늘 아침 식사를 챙겨줬다. 아침을 먹으며 이뤄지는 ‘사랑방 정치’는 신문 지면으로, TV 브라운관으로 퍼졌고 국민들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이었다.
2000년대 접어들며 페이스북 등 SNS가 활성화되자 정치 환경도 변했다. 정치인들은 정치 상황에 대한 입장을 SNS에 직접 올리기 시작했다. 신문 지면 등을 통하지 않아도 국민들과 맞대면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SNS 이용자들은 실시간으로 정치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며 호응했다. 최근 대선주자들도 페이스북을 통해 강연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거나 재미있는 동영상을 게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SNS 댓글을 넘어서 국민들의 정치 참여가 더 직접적인 형태로 바뀌게 된 계기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찬성·반대하는 의원들의 명단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의원실과 의원 개인 휴대폰으로 연락이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판세를 지켜보기 위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던 몇몇 의원들은 끊이지 않는 전화 홍수에 탄핵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문회 증인 출석을 거부한 후 행적이 묘연해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두고 펀딩으로 현상금을 모금하거나 직접 찾아나서는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도 대폭 늘어났다.
반면 SNS는 정치 흐름을 왜곡하는 데도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페이크 (가짜) 뉴스’가 SNS를 타고 흐르면서 50~60대 이상의 여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지역의 한 의원은 “지역구 몇몇 분과 만난 자리에서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이 특별검사와 탄핵심판은 위헌이라는 인터뷰를 했다는 내용의 페이크(fake) 뉴스를 전해들었다”며 “그 다음날 같은 내용의 페이크 뉴스가 여기저기에서 수십 개 쏟아지더라”고 밝혔다.
◇대선주자들도 ‘카톡 정치’…공유 속도 빨라졌지만 소통은 의문=기자들이 각 대선주자에 관한 정보를 접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직전 대선이 치러진 2012년만 하더라도 잠룡들의 정책이나 입장문 등은 출입기자들의 e메일로 전송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담당기자들이 포함된 단체 카톡방에 대선주자의 일정부터 발언·정책설명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과거에 비해 전파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진 것이다.
대선주자별 단체 카톡방 중 기자 인원이 가장 많은 곳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카톡방이었다. 기자들과 특정 정당 당직자, 팬클럽까지 합해 300명 이상의 ‘매머드급 단체 카톡방’이 운영됐다. 캠프에서는 1일 오전 190명가량 기자들만 포함시킨 새로운 방을 만들었지만 같은 날 오후 반 전 총장이 전격 불출마 선언을 해버렸다. 결국 같은 캠프 안에서 정보 칸막이가 얼마나 심각한지만 스스로 증명하게 됐다. ‘1사 2인’으로 가입 제한을 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단체 카톡방 인원은 각각 90여명과 110여명이다. 안 지사는 최근 지지율이 급상승하기 시작하면서 취재기자들이 몰리자 가입 요건을 ‘1사 1인’에서 ‘1사 2인’으로 완화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이곳에서 캠프 실무진의 아이디를 빌려 기자들에게 깜짝 인사를 하기도 한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텔레그램을 이용해 단체 채팅방을 직접 운영한다. 이 시장은 이곳에서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나 해명 글 등을 올린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카톡방에는 각각 170여명, 70여명이 포함돼있다.
카톡은 대선주자 캠프의 입장에서는 쉽고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야권주자 캠프 관계자는 “e메일은 속도가 느리고 기자들에게 전달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카톡은 정보 전달부터 확인 유무까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어서 관리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다만 1980년대 아침밥을 먹으며 이뤄졌던 ‘사랑방 정치’에 비해 소통의 깊이는 얕아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각 단체 채팅방마다 수시로 울리는 알림 표시로 인해 기자들 사이에서는 ‘카톡 지옥’에 갇혔다는 푸념도 나온다. /권경원·박형윤기자 na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