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너저분하게 뿌려진 ‘전단지’를 보면 그냥 쓰레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버려지는 전단지를 어디서 만드는지 알면 찾아가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요”
지난 10일 지하철 2호선 건대입구역 주변 번화가를 지나던 대학생 박병진(26)씨는 거리에 흩뿌려져 있는 전단지를 보며 혐오감을 감추지 못했다. 흔한 대출 광고부터 주변 헬스장 광고까지 다양한 내용과 현란한 디자인으로 도배된 불법 전단지가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씨가 분노를 쏟아내는 와중에도 한쪽에서는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 직원들이 각종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곳저곳 버려진 전단지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의 전봇대, 가로수, 신호등, 버스 정류장. 어디라고 할 것 없이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서울시의 현실이다. 이를 떼어내고 나면 어느새 다른 전단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른바 ‘전단지의 홍수’는 주택가까지 범람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현관문이나 우편함에 원치 않는 광고물 수십 장이 꽂혀 있는 것도 예삿일이 돼 버렸다.
떼어내도 그 위에 다시 덧붙여지는 불법 광고물들. 마구잡이식으로 뿌려지는 불법 전단지는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거리의 전봇대에는 물론이고 버스 정류장, 가로수, 건물 외벽, 차량에까지 광고물 부착의 흔적이 남아 있다. 미관상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불법 전단지에 가려져 대부분 시설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심지어 대부업과 성인물 관련 불법 광고물들은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앞까지 점령해버렸다.
안전상의 문제도 존재한다. 대로변에 무단으로 설치된 불법 현수막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던 행인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건물 외벽에 걸려있는 불법 현수막을 제거하려다 떨어져 중상을 입고 아래에 있던 차량이 파손된 경우도 있었다.
‘불법 광고물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자체들
홍보 및 광고 목적으로 배포되는 광고물들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반드시 구청의 검인을 받아야 한다. 구청을 방문해 전단지(A4 용지 크기 기준) 1,000매당 수수료 5원만 지불하면 적법한 광고물 부착이 가능하다. 검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배포되거나 도로변에 무단으로 뿌려지는 광고물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불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1,489만 건이었던 불법 전단 또는 벽보 정비 건수는 지난해 2,313만 건을 기록했다. 이에 서울시 28개 자치구는 ‘불법 광고물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영림중학교 3학년 오혜진(15)양은 영등포구에서 운영 중인 ‘청소년 대상 불법 광고물 정비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영등포구는 지난 2014년도부터 매년 방학에 인근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불법 전단지 수거 봉사활동 ‘인정제’를 시행 중이다. 구 입장에서는 직원들만으로 역부족인 불법 전단지 수거 활동을 보완하고, 학생들은 불법 전단지를 거두면서 학교에서 요구하는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는 ‘윈-윈’ 게임이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이달 10일까지 2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봉사활동 기간에 구청을 방문해 30L 용량의 검은 봉투를 지급 받고, 희망하는 시간에 따라 4시간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오양은 “200~300m만 걸어가도 이렇게 큰 봉투가 가득 차요. 굳이 시간을 내서 먼 곳까지 돌아다니지 않더라도, 발에 차이는 게 전단지이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봉사활동이예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지도하고 있는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헬스장 광고 전단지가 가장 공격적으로 무분별하게 붙여지고 있다. 아주 골목 안 구석구석까지 정말 많이 붙어있다”고 말했다.
도봉구에서도 불법 전단지 근절을 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도봉구에 거주 중인 학생 김모(18) 군은 중·고교 기간 중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재작년(당시 중학생)부터 전단지 수거를 시작했다. 김군은 “하굣길에나 잠시 외출을 다녀오면서 불법 전단지가 보일 때마다 뗐다. 전부 몇 장인지는 정확히 세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큰 종이 쇼핑백에 가득 담아서 가져갔다”고 말했다. 도봉구청은 불법 전단지 100장 당 봉사활동 2시간을 인정하고 있다. 김 군은 거리에 불법 전단지가 워낙 많다 보니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하루에 50장씩은 거뒀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저소득층 주민들의 수입원과 자치구의 환경 미화를 한번에
구로구청에서는 불법 현수막을 근절하기 위해 ‘불법 광고물 수거 보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직원들이 나서서 지속적으로 불법 광고물을 제거하고 있지만, 최근 분양 광고 관련 불법 현수막이 부쩍 늘어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구로구청에 따르면 구청으로 걸려오는 구민들의 불법 현수막 관련 민원처리가 하루에도 20~30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특히 주말과 야간에 기습적으로 살포되는 불법 광고물 특성상 구청이 모든 불법 광고물을 단속하는 데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에 구청은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수거보상제 단속원들을 모집해 거리를 정비하고 있다.
불법 현수막 수거보상제는 불법 현수막을 거둬 오면 보상금을 지급해 주는 사업으로, 구민들이 참여하면서 구내의 사각지대에 설치된 불법 현수막에 대한 정비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지난해 구로구청에서만 단속원 총 13명이 참여해 불법 현수막 2만7,526장을 거둬들여, 불법 광고물 업체들에 과태료로 10억원 이상을 부과했다. 불법 현수막 수거 보상금액은 1일 10만원, 월 300만원 한도, 보상단가는 일반형 현수막 2,000원, 족자형 현수막 1,000원이다. ‘불법 광고물 수거 보상제도’에 참여 중인 20년 경력의 베테랑인 정동환(50)씨는 “주말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꼬박 거둬들이면 불법 현수막 250~280매 정도 수거 가능하다. 그마저도 요즘은 수량이 줄어들어 죽어라 돌아다녀야 그나마 수량을 맞출 수 있다”고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범람하는 도시 내 불법 광고물에 대해 김기호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불법 전단지 부착에 대한 ‘일벌백계’가 필요하다. 제도나 조례를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들은 국민의식이 높아 불법 광고물을 부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엄중한 처벌을 받기에 자제하는 것”이라며 “불법 광고물에 대한 과태료를 훨씬 높게 부과하거나, 이에 그치지 않고 해당 광고물 업체들을 적발하는 등 강력한 행정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현재 자치구에서 시행 중인 제도와 동시에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해야 하고, 신고 절차를 간소화해 실제로 불편을 겪는 시민들이 사진을 찍어 구청에 신고하면 즉각 단속을 나올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종호기자 이세영 인턴기자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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