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서울올림픽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열린 이 국제적 행사는 한국 대중에게 환희와 영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실제로 지난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민들이 생각하는 역사적 사건’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전쟁이 72.2%(복수응답)로 1위에 올랐고 2위가 바로 서울올림픽 개최(64.1%)였다. 이는 3위인 8·15광복(62.7%)보다 높은 순위였다. 그래서일까. 서울올림픽의 주무대인 송파구 잠실에는 이를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 드러난다. 올림픽대로·올림픽공원·올림픽기념관 등 이를 기억하려는 건물과 조형물은 잠실 도처에 있다. 특히 그 중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막식이 열리고 종합운동장의 맏형 격인 잠실 주경기장은 외형적으로도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일 뿐만 아니라 상징성으로도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적 아름다움의 표상
80여개 기둥이 떠받치는 유려한 지붕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매혹적
잠실 주경기장은 연면적 13만3,649㎡에 최대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건축물이다. 주경기장은 대형 건축물이 가진 다이내믹함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친근하며 인간적인 크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왜 그럴까.
경기장은 3층 구조로 설계돼 있는데 경기장 밖 정문에서 북쪽 방향을 보면 80여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상층부를 떠받치고 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지붕이다. 이 지붕은 곡선의 흐름을 뽐내며 유려하게 뻗어 있다. 이런 곡선적 흐름은 주변부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곡선의 미’를 뽐내는 설계는 한국 현대 건축가 1세대로 불리는 김수근이 한 것인데 백자의 항아리선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대규모 국제행사에서 한국적 미를 뽐내고 싶어했던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주경기장은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함께 서울올림픽의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상징하는 조형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결국 한국적 미를 잘 살려낸 건축은 보는 이에게 낯선 중압감보다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오게 한다.
1981년 55세의 나이에 타계한 김수근은 생전 이런 외형적 선에 대한 아름다움을 자주 얘기했으며 애착 또한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0년 장기 프로젝트로 탄생한 경기장
박정희, 1973년 건립 지시·84년 완공
亞게임 유치용에서 올림픽용으로 변경
주경기장의 건립은 10년에 걸친 장기간 프로젝트였다. 원로 도시학자 손정목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잠실지구에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경기를 개최할 수 있을 만한 시설을 계획하라는 지시를 한다. 이에 서울시는 관련 작업을 진행하면서 1975년 김수근에게 잠실운동장 계획을 맡겼다. 그리고 그해 10월 김수근은 설계를 완성해 시에 제출했고 약 1년 뒤인 1976년 9월 정부는 공식 발표하게 된다. 당시 구 시장은 “1982년 9회 아시안게임을 서울에 유치할 것을 대비해 1977년부터 1982년까지 5년간 총예산 250억원을 투입해 주경기장 등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주경기장은 애초에 아시안게임 유치를 목적으로 계획됐던 것이다. 하지만 박종규 청와대 경호실장이 1979년 2월 대한체육회장으로 부임하면서 올림픽 유치용으로 변경됐다. 1979년 9월 국민체육심의위원회가 서울올림픽 유치 결의를 하고 10월8일 정부는 올림픽 유치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곧 10·26이 터져 이런 계획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5공 정권은 다시 밀어붙였고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1984년 주경기장은 세상에 나오게 됐다.
■한국 체육의 보금자리
30여년간 주요 국제경기·행사 개최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스포츠 성지
잠실 주경기장은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시설이 변변치 못하던 시절 체육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가령 국민 스포츠인 축구의 경우 국제경기 대부분이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그래서 국민들의 열망과 함성이 녹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에야 상암 월드컵경기장 등 새로운 스포츠 시설이 생겨 예전의 위치에서 다소 밀려난 모양새지만 우리의 자랑거리이자 자존심이기도 한 잠실 주경기장의 상징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 열린 각종 행사들과 그 속에 얽힌 환희와 영광, 애환의 역사가 무형의 자산으로 영원히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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