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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영욕의 삶] 비운의 영애에서 구속까지

비운의 令愛 → 정치 입문 → 선거 여왕 → 첫 여성 대통령 → 파면 불명예→구속

<박근혜 ‘영욕의 역사’>

1963년 靑 첫발...1974년부터 퍼스트레이디로

1998년 국회입성...신뢰·원칙 앞세워 승승장구

부녀 대통령으로 34년만에 화려하게 靑 재입성

‘40년지기 최순실’에 발목...임기 못채우고 퇴진..구속





약 20년에 걸친 정치인생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선거의 여왕’에서 ‘최초로 탄핵받은 대통령’으로 추락했고 구속됐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지난 1963년 처음 발을 내디뎠던 청와대를 떠났고 구속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지만·근령 등 가족들과 찍은 기념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찍은 기념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970년대 한창이던 새마을운동에 참여해 주민들을 격려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영전에 헌화·분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영애→퍼스트레이디→칩거생활=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2년 만인 1963년 영애(令愛)로서 청와대에 입성했다. 어린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낸 뒤 197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같은 해 광복절 경축행사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피살당하자 급히 귀국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박 전 대통령은 영애에서 퍼스트레이디로 변신하게 된다. 국정농단 사건을 일으킨 최순실씨와의 인연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에 맞아 서거하면서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생활도 마무리됐다. 박 전 대통령은 10·26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가량 지나 서울 신당동 자택으로 들어가 18년간 긴 칩거생활을 시작한다. 이 기간에 육영재단 이사장과 정수장학회 이사장, 영남대 재단 이사장 등으로 활동했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는 생활을 지속해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나와 당선돼 축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법전 종정 추대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만나 합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5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찍은 기념사진.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04년 총선 때 손에 붕대를 감고 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지원유세를 하던 중 피습을 당했다. /서울경제DB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제3차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초 여성 대통령에서 구속까지=박 전 대통령이 정치생활을 시작한 시점은 1997년 11월이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선거운동을 했다. 다음 해인 1998년에는 본인이 직접 대구 달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정치인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과 한나라당 재합류 등의 과정을 거치던 중 ‘정치인 박근혜’가 두각을 보인 계기는 ‘차떼기’ 불법 대선자금 사건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었다. 한나라당이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2004년 구원투수로 등장해 2년 3개월간 당 대표를 역임했다. 이때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천안 연수원을 매각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특히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0’ 완승을 거둬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2006년 서울 신촌로터리에서 지방선거 유세 도중 오른쪽 뺨이 칼에 찢기는 테러를 당한 와중에도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선거 판세를 물었던 일화는 유명하다.



200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패한 뒤에는 비주류로 밀려 친박계를 이끌었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여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이미지를 얻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차떼기 사건 이후 2011년 서울시장 보선 패배와 디도스 공격 파문 등으로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하자 당 전면에 재등판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며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등 또 한 번 파격 행보를 보였다. 그 결과 2012년 4월 총선에서 152석의 과반의석을 확보해 ‘선거의 여왕’임을 다시 입증했다.

이후 압도적인 지지율로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제18대 대선에서 ‘최초 여성 대통령’이자 ‘최초 부녀 대통령’까지 됐다. 1979년 청와대를 떠난 지 34년 만에 대통령으로 재입성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임기 4년 차인 2016년에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지면서 탄핵심판과 특별검사 수사를 동시에 받는 상황에 처했고 결국 국내 역사상 최초로 탄핵받아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으로 기록에 남게 됐다. 그리고 3월 31일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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