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전 소장 권한대행이 13일 퇴임하면서 7인 체제에 돌입한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식물상태가 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개월간 탄핵심판에 집중하느라 밀린 사건이 많은 데다 후임자 지명과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7인 체제로는 정상적인 심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소장 퇴임으로 9인에서 8인이 됐고, 이정미 전 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3일 임기가 끝나면서 재판관 7인 체제가 됐다.
헌법재판관 2명 이상 공석이 된 것은 2000년대 이후로 5번째다.
2006년 8월과 2013년 3월에 20여일간 7인 체제로 운영됐으며 2012년 9월에는 재판관 4명이 동시에 임명될 때까지 5일간 5인 체제가 된 적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재판관 7인 이상이 있으면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모든 헌법재판에 대해 심리하고 결정하는 것이 법규상 가능하다. 재판관회의도 7명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헌재 한 관계자 역시 “재판관 7명으로도 재판을 할 수 있고 실제 과거에 그런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9명이 있어야 할 재판에 2명이나 공백이 생겨 현실적으로 제대로 된 재판은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한철 전 소장도 퇴임에 앞서 7인 체제를 ‘헌법적 비상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선례에서도 매우 극소수의 재판만 이뤄졌으며 대부분 안건은 진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헌법재판은 원래 재판관 9명이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1명의 결원이 생기는 경우는 몰라도 2명이 공석이면 사실상 재판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심판 결과가 왜곡될 수 있고 정당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행 후임으로 지명된 이선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임명될 때까지 당분간 제대로 된 헌법재판 진행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장은 이선애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난 10일 국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여서 이르면 이달 말 임명된다.
나머지 한 자리인 헌재소장은 대통령에게 임명권한이기 때문에 대선 이후 지명이 가능하다. 헌재가 9인 체제로 가동되는 것은 빨라야 6월일 것으로 전망된다.
헌재가 지난 3개월간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 집중하면서 처리되지 않은 사건 수는 총 843건에 이른다. 올해만 미제 사건이 120건 늘었다. 헌재의 정상화가 우려되는 가운데 향후 정치권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성윤지 인턴기자 yoonji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