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리더로 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은 연방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뽑히는 대통령이 국가 원수지만 실질 권한은 의회 다수파의 리더인 총리가 갖는다. 총리가 평균 7년 이상 집권할 정도로 자주 바뀌지 않고 대통령(5년 연임 가능)과 총리 간 갈등도 별로 없다.
대통령이 전후 70여년간 총리가 올린 문서를 다시 연방의회로 돌려보낸 게 8번에 불과하다. 고위공직자 임명권도 있지만 대부분 총리의 의견을 존중한다. 물론 총리도 각료들과 주요 사안을 같이 결정하며 독립성을 보장한다.
1871년 프로이센이 통일했다가 1945년 동·서독 분단을 거쳐 1990년 재통일된 독일은 중앙집권의 역사가 짧아 연정을 통해 정치안정을 꾀한다. 각 주에는 독립성이 크게 보장돼 있고 헌법재판소의 기능도 상당히 강하다. 1949년 서독연방공화국 들어 사민당이 전후 처음 집권한 1966∼1969년을 제외하고 중도좌파연합 또는 중도우파연합의 소연정을 하다가 지금은 동독 출신인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사민당과 함께 2005∼2009년, 2013년부터 현재까지 대연정을 하고 있다. 16년 집권하며 통독을 달성한 헬무트 콜처럼 메르켈이 오는 9월 총선에서 4연임할지 관심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1919년 등장한 민주적인 바이마르공화국이 14년간 총리가 14명이나 될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해 아돌프 히틀러 등장의 빌미를 줬고 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김동철 국회 개헌특위 국민의당 간사는 “독일이 1949년 만든 ‘본기본법’에 ‘건설적 불신임제’를 둬 2년 내 총리를 불신임하지 못하고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불신임하더라도 후임 총리를 하원에서 먼저 선출하도록 한 게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총리는 국정운영이 힘들면 의회에 신임투표를 제안할 수도 있으나 역대 5번 중 2번은 실패해 위험 부담이 따른다. 의회는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반반으로 정당득표율을 반영해 표의 등가성을 최대한 반영한다.
이원집정부제인 오스트리아는 1차 세계대전에 패하고 좌우 대립이 심해져 2차 세계대전 후 내각제를 하되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고 있다. 9개 자치주로 구성된 연방의 총리는 1당에서 나오는데 대통령이 임명한다. 6년 연임이 가능한 대통령은 총리의 요청으로 각료도 임명한다. 의회는 총리나 장관에 대해 신임 여부만 표명한다.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이 있으나 한 번도 행사한 적은 없다.
혼합형 대통령제인 프랑스는 대통령의 권한이 크다. 1946년 출범한 4공화국 의원내각제를 거쳐 1958년 5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샤를 드골 대통령은 내각 임명권과 국회 해산권을 가졌고 이후 조르주 퐁피두,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 대통령 때도 의회 다수파라 총리는 얼굴마담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총리의 당이 다른 동거정부가 1986~1988년, 1993~1995년, 1997~2002년 세 차례 구성됐을 때는 내각을 구성하는 총리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내각제 요소가 크게 작동해 정상회담에도 둘이 같이 갈 정도여서 때로는 갈등관계가 노출됐다. 이에 2000년 헌법을 바꿔 대통령 임기를 7년 연임 가능에서 5년 연임 가능으로 바꿔 의원 임기와 맞춰 대통령과 총리의 당이 같도록 유도했고 대통령이 외교는 물론 국내 경제정책까지 최종 결정하고 내각을 임명할 정도로 힘이 세졌다.
프랑스는 폭정을 한 왕의 목을 쳤던 1789년 대혁명 정신이 대통령의 권력 남용과 부패를 견제한다. 심지어 드골조차 1968년 국민의 하야 요구에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4월23일(5월7일 결선) 치르는 대선은 물론 6월 총선도 결선투표제를 실시해 연합정치를 유도한다. 의원의 70~80%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부단체장·지방의원을 겸직해왔으나 6월에 뽑히는 의원부터는 지방의원은 같이 할 수 있으나 지방자치단체장과 부단체장 겸직은 금지된다. 각료 겸직은 원래 금지돼 있다.
미국은 대통령제 국가이나 50개 주가 외교 등을 제외하고는 독립국 수준의 자치를 해 대통령 권력이 제한적이다. 예산편성권과 법률안제출권도 연방의회가 갖고 있다. 사법부도 완전히 독립적이다. 3권 분립원칙에 따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확고하다.
대통령은 외교·국방·통상 문제 등을 책임지고, 연방 간 이견을 조정하고, 핵심 어젠다에 대해 이슈를 제기한다. 20세기 이전에는 상원이 대부분의 결정권을 가지다가 재벌개혁 등을 추진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정권 들어 권한이 커졌고 1차 세계대전에 뛰어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거쳐 대공황 극복과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시절에 강해졌다. 하지만 루스벨트가 1935년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사회의료보험도 국회 통과와 대통령 서명까지 마쳤지만 위헌소송 제기로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났으며 미국은 지금까지 이 이슈를 놓고 골치를 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 대통령·부통령은 4년 중임제로 당선 2년 뒤 번갈아 임기가 종료되는 주지사, 연방 상하원, 시장, 주 의원 선거를 통해 중간평가를 받는다. 의원의 각료 겸직도 금지된다. 정치학자인 후안 린츠는 “대통령제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대통령제는 한국 외에 미국·프랑스·멕시코·폴란드·칠레뿐이다. 한국처럼 대통령의 힘이 강한 나라는 드물다. 개헌 전문가인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나라마다 역사적 환경과 정치문화에 따라 권력구조가 다르지만 분권형 권력구조가 대세”라고 강조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개헌안에는 국민 기본권과 지방자치분권이 강조돼야 하고 정당 득표율이 의석수에 반영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같이 도입해야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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