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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대선 주자들의 4차 산업혁명 타령

최형욱 디지털미디어부장

대우조선 등 주력산업 대책 외면

'선거용' 4차혁명 구호만 난무

규제 완화 등 구체적 청사진 없어

'창조경제' 실패 전철 밟을까 우려





“신은 무엇을 이룩했는가.”

지난 1844년 워싱턴DC와 볼티모어 간 미국 최초의 전신망이 열렸을 때 시험 삼아 처음 전달된 짤막한 문장이다. 이후 미 전역에 그물망처럼 깔린 전신망은 마치 ‘신의 손길’처럼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있다. 당장 뉴욕과 경쟁하던 필라델피아·보스턴 등 지역 금융 허브들이 몰락했다. 주가, 채권 가격 등 금융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자 따로 존재할 이유를 잃은 탓이다. 뉴욕이 런던과 더불어 글로벌 금융 허브로 자리 잡은 것도 이때부터다. 1866년에는 미·유럽 간 전신망이 개설되면서 과거 증기선을 통해 최소 2주나 걸리던 정보 전달 기간이 수분내로 단축됐다.

전신망은 당시 신기술의 집약체였던 철도와 결합해 위력이 더 커졌다. 수요·공급 관련 정보가 급속도로 빨리 교류됐고 철도 등 운송 수단은 원자재·농산물 등의 상품 유통을 뒷받침했다. 파편화돼 있던 미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가 하나로 통합됐다. 각국은 치열한 가격 경쟁에 돌입했고 이는 일부 국가의 농촌 몰락 등 사회적 격변을 초래했다.

흔히 3차 산업혁명의 시발점은 1969년 인터넷 출현이라 말한다. 인터넷이 컴퓨터 정보화, 자동화 생산시스템 등을 이끌면서 생산성이 비약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정보통신 혁명은 지금은 축전이나 보낼 때 쓰는 173년 전 전신 기술에서 시작했다.

우리 주변에 흔한 자동차나 가전제품들도 과거에는 인터넷 출현 못지않은 사회적 격변을 초래했다. 세탁기의 등장으로 가사 노동에서 해방된 여성들이 경제활동인구로 편입되자 남녀평등이 가속화했다. 냉장고는 식품·유통·외식 산업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TV는 소비 촉진과 제조업 대형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퀀텀점프(대도약)’를 초래했다. 생산성 향상 효과 측면에서 인터넷은 2차대전 이후 대중화된 냉장고·세탁기·TV 등에 비해 한참이나 밑돈다는 점은 여러 연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구닥다리 얘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대선주자들이 유행처럼 떠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때문이다.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눈앞에 닥친 위기이자 기회 요인이라며 너도나도 국정과제로 제시한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인공지능(AI)·로봇·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활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대선주자들의 4차산업 혁명 타령이 자신들의 정책적 무능함을 감추기 위한 면피용 구호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선·철강·해운·자동차 등 위기에 처한 기존의 주력산업에 대한 비전 제시나 대책은 거의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대우조선해양의 해법이다. 우리 경제의 ‘발등의 불’인 대우조선마저 표 계산과 선거용 주판알만 튕기면서 무슨 4차 산업혁명 타령인가.

결코 4차 산업혁명의 파괴력을 경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 거대한 물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는 또 한 번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제 정책에는 선후가 있고 현재와 미래를 조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전신망 출현에서 보듯 첨단 신기술은 항상 경제·사회적 격변을 몰고 왔다. 4차 산업혁명이 마치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도전’이라는 식으로 과대 포장해서는 곤란하다. 가장 최신 신기술의 동향에 지나치게 놀랄 경우 자원 배분과 정책 우선순위를 왜곡시켜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대선주자들의 4차 산업혁명 구호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태생적으로 민간 주도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생명인 만큼 규제 완화가 필수이다. 하지만 원격진료, 인터넷 전문은행, 빅데이터, 핀테크, 전기자동차 등과 관련된 여러 지원 법안에 사사건건 제동을 것도 지금의 야당이다. 앵무새처럼 4차 산업혁명을 떠드는 게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대선주자들이 세밀한 청사진도 없이 선거 공학으로만 접근하는 바람에 4차 산업혁명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처럼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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